0. 두 사람


해변에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 

적우와 강은 동일한 브랜드, 디자인, 사이즈의 청 반바지와 흰색 반소매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바람이 불자 얇은 티셔츠 아래로 윤곽이 드러났다. 두 사람은 가슴의 넓이와 허리의 오목한 정도가 비슷했다. 나부끼는 모래를 뱉는 입, 한쪽만 찡그리는 눈, 숨을 뿜는 코의 선도 비슷했다. 다만, 적우의 흰 티셔츠에선 노란 기가 돌았고, 강의 티셔츠에선 푸른 기가 돌았다.

둘은 엉덩이를 들썩이며 다리를 떨어댔다. 허벅지가 부딪치며 탁탁 소리가 났다. 팔꿈치도 슬쩍 스쳤다. 지나가는 몇 피서객은 닮은 그들이 붙어있는 걸 보고 한순간 눈살을 찌푸렸다. 

하늘이 이르게 식어갔다. 주변 상록수의 줄기는 뻣뻣해졌고, 멀리 보이는 숲 사이사이로 붉고 노란 얼룩이 퍼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공기는 아직껏 끈적했다. 두 사람은 수평선 아래로 가라앉는 태양을 피하지 않고, 눈을 가늘게 뜬 채 해변까지 와서 부서지는 물거품을 지켜봤다. 

적우가 옆에 있던 회색 백팩의 지퍼를 내렸다. 속에는 원판, 생수, [퓨어 니코틴]이 적힌 튜브, 잭 다니엘, 같은 모양의 잔 두 개가 있었다. 손잡이 없는 유리잔 두 개가 모래 위에 박혔다. 잔 하나에 투명한 생수가 담겼다. 다른 잔에는 투명한 니코틴 액상이 쏟아졌다. 적우는 노즐에서 방울이 떨어지지 않을 때까지 튜브를 꾹 눌러 짜냈다. 강은 빈 생수병을 들어 니코틴 위에 붓는 척하고, 빈 튜브를 집어 생수 위에 넣는 척했다. 그리고 두 잔 위로 잭 다니엘을 따랐다. 짙어진 액체가 가장자리에서 넘실거렸다. 두 개의 잔은 겉으로 같아 보였다. 잔이 흔들리면서 액체가 조금 넘쳤다. 모래 위에 둥근 자국이 생겼다. 

날이 어슴푸레해졌다. 피서객들이 바다 반대 방향으로 돌아갔다. 남은 사람은 몇 없었다. 오른쪽에서 젊은 부부가 어린 아들의 양팔을 잡고 위로 높이 끌어올렸다. 아이가 까르르 웃으며 한 번 더 해달라고 외쳤다. 왼쪽에선 대학생으로 보이는 여자 다섯 명이 카메라를 세워두고 앞으로 뛰어갔다. 그들은 사그라드는 노을빛을 배경으로 팔짱을 끼고 섰다. 그리고 하나, 둘, 셋 구령에 맞춰 소리 없는 웃음을 지었다.  

적우와 강이 잔을 하나씩 들고 맞댔다. 작고 둔탁한 소리만 났다. 그들은 주위 사람에게 들리도록 큰소리로 하나, 둘, 셋이라고 말하고, 단숨에 액체를 들이켰다. 

두 몸이 경직되었다. 불거진 눈을 굴리던 강이 스르륵 일어나 바다를 향해 걸어갔다. 적우도 바닥에 있던 원판을 들고, 바지를 털면서 그를 따랐다. 그들은 나란히 서서 고개를 치켜들고 해수면을 바라봤다. 물결 위에서 빛이 산란했다. 적우가 바다를 향해 원판을 힘껏 던졌다. 두 사람은 동시에 헛구역질을 했다. 한 사람은 마른기침을 뱉었고, 한 사람은 역류한 것을 삼켰다. 후끈했고, 피부가 따끔거렸다. 

둘은 신고 있던 플립플롭을 모래 위에 가지런히 벗어두고 바다로 들어갔다. 물이 발목까지 왔다. 소름이 돋았다. 더 깊은 곳으로 향했다. 바다가 가슴까지 오자, 찬 기운에 익숙해졌다. 

두 사람은 굳은 얼굴을 마주 보다 픽 웃었다. 둘은 몸을 돌려 포옹했다. 서로의 심장박동이 서로에게 전해졌다. 강은 적우의 티셔츠를 잡고 위로 올렸다. 모래사장을 힐끗하며 머뭇거리던 적우도 강의 옷을 벗겼다. 두 개의 흰 티가 주위에서 맴돌다 떠내려갔다. 맨살을 빈틈없이 밀착하자 박동이 겹쳤다. 어느 게 누구의 것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바다의 명도가 계속 낮아졌다. 물이 시렸지만, 맞닿은 곳은 뜨거웠다. 미묘하게 어긋나던 심장 박자가 점차 맞춰졌다. 파도가 다가올 때마다 몸이 흔들렸고, 미끄러운 피부가 위아래로 마찰했다. 

그의 목 깊은 곳에서 신음이 끓었다. 그는 잔뜩 힘이 들어간 팔로 다른 사람을 부둥켜안았다. 다른 사람은 압박감에 끙 소리를 냈다. 그의 신음이 입 밖까지 새 나왔고, 표정은 일그러졌다. 다른 사람은 흔들리는 수정체에 그의 얼굴을 담으려 했다. 반면, 그의 수정체는 멈추고 있었다. 끝에 맺히는 게 없었다. 입가에서 거품이 흘러나왔다. 그는 입가를 닦으며 다른 사람 목에 얼굴을 묻었다. 액체가 목덜미를 타고 흘러내렸다. 다른 사람은 액체의 궤적을 느꼈다. 

그의 부들거리는 손톱이 다른 사람의 등을 긁었다. 직선 위로 피가 맺혔다. 다른 사람은 손바닥으로 그의 등을 쓸었다. 이어 손끝으로 척추를 훑었다. 두 사람의 입과 등에서 나온 피가 수면에 퍼지며, 붉은 실 모양으로 너울거렸다. 실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금세 형태를 잃었다. 그의 몸이 경련하더니, 늘어지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은 그를 더욱 세게 붙잡고 안았다. 그의 체온은 찬물에서 더 쉽게 식었다. 그의 피부가 혈기를 잃어갔다. 다른 사람은 그에게 온기를 빼앗겨 갔다. 그에게서 몸을 떼어냈다. 

만조가 되었다. 바다가 목까지 차올랐다. 물살이 잔잔해졌다. 하나의 심장만 뛰었다. 

산 사람은 죽은 사람의 머리칼을 위로 넘기고, 얼굴을 쓰다듬었다. 손바닥에 이물감이 느껴졌다. 흐물흐물해진 작은 흰색 덩어리가 붙어 있었다. 엄지와 검지로 만지다 짓눌렀다. 덩어리가 뭉개지면서 가루가 되었다. 그는 손을 바다에 넣어 그것을 씻어냈다. 녹아 사라졌다. 




부표





1. 소나기(3개월 전)



소나기가 내렸다.

높다란 건물이 꼭대기서부터 젖어 들었고, 아스팔트가 검어졌다. 떼 지은 자동차 소리가 증폭되었고, 공기에 흙냄새가 스몄다. 먹구름이 해를 가리자, 구름 가장자리가 은색으로 빛났다.

옥탑방 문을 열고 나온 적우의 볼에 빗방울이 떨어졌다. 적우는 볼을 닦으며 문 주위를 살폈다. 우산이 보이지 않았다. 1층까지 내려온 적우는 다시 헉헉거리며 5층 계단을 올라갔다. 신발장 뒤에도 우산은 없었다.

두터워지는 먹구름이 은빛마저 가렸다. 비가 거세졌고, 적우는 뛰었다. 회색 나일론 백팩을 메고 있어 뛰는 폼이 엉성했다. 횡단보도 앞에 서자 신호가 빨간색으로 바뀌었다. 기다리는 동안, 적우는 비를 받아냈다. 그는 헐거운 흰색 반소매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떨어지는 빗방울이 옷 위에 직선을 그었다. 선은 늘어나면서 면이 되었다. 축축해진 티셔츠가 바짝 달라붙었다. 투명한 면 안으로 적우의 몸이 비쳤다. 노랗고 붉은 얼룩이 팔뚝, 가슴, 배, 옆구리에 물들어 있었다.

신호가 바뀌었다. 적우는 서둘러 걷다가 파인 곳에 고인 물웅덩이를 밟았다. 어느 정도 젖어있는데도, 서늘한 기운이 발목에서부터 오금까지 올라왔다. 걸을 때마다 양말과 깔창 사이가 질척거렸다. 두 번 접은 청바지 밑단이 무거웠다.

적우는 입술을 씹으며 버스 정류장 전광판을 노려봤다. 오전 5시 46분이었다. 그는 휴대폰을 꺼내, 네이버 지도 앱을 켜서 화면을 5초마다 새로고침했다. 발을 가만두지 못하고 정류장 안을 돌아다녔다. 

그는 버스 손잡이를 잡고 휘청거렸다. 손등의 베인 흉터에 맺힌 빗물이 곡선을 그리며, 팔의 화상 흉터를 타고 흘렀다. 물방울은 다른 물방울과 만나면서 줄기가 되었고, 겨드랑이를 지나 갈비뼈까지 훑고 내려갔다. 이따금 바짓단 아래로 미적지근한 물줄기가 주룩 흘렀다. 앞에 앉은 승객이 휴대폰을 보면서 창문 속 적우를 흘깃거렸다. 적우는 잠시 손잡이를 놓고 가방을 앞으로 돌려 멨다. 버스가 신호등 앞에서 급하게 멈췄다. 적우는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다 큰 소리를 내며 철퍽 넘어졌다. 손바닥과 무릎을 바닥에 세게 박았다. 그는 곧장 일어나 손을 털었다. 귀가 벌게졌다. 출구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흰 티에 온통 검은 물이 묻었다. 옆에 서 있던 승객은 적우와 부딪히자 투덜거렸다. 적우는 머리를 숙였다.

창문 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프랜차이즈 간판이 죽 나열됐다. 풍경은 여전히 생소했다. 버스가 멈췄다. 영화관 입구가 보였다. 적우는 출구 쪽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 버스가 출발했다. 뒷걸음질 쳐 원래 위치로 돌아갔다. 아래에서 물비린내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더라.

출입문 위에 빨갛고 작은 비상용 망치가 걸려있었다. 

버스에서 내리자 비가 그쳤다.

적우는 상암동에 있는 [벅스 버거] 앞에 도착했다. 간판엔 흰토끼가 그려져 있었다. 한 손엔 햄버거를, 다른 손엔 회중시계를 들고 있었다. 그는 좁은 골목을 지나 가게 뒷문을 열었다.

높은 선반에 놓인 캠코더 화면에 주방 모습이 담겼다. [●녹화중] 아래로 적우가 움직였다. 티셔츠 위로 김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는 보조 등 하나만을 켜고, 가방에서 너덜너덜한 노트를 꺼내 펼쳤다. 표지와 처음 몇 장이 젖었지만 속은 괜찮았다. 스토리보드 형식의 노트였다. 왼쪽 사각형엔 햄버거 그림이, 오른쪽 줄엔 글씨가 적혀 있었다. 꾹꾹 눌러썼는지, 뒷면에 글자가 양각으로 튀어나와 있었다. 적우는 가장 최근에 쓴 장을 찾아 넘겼다. 빈 사각형 옆에 설명만 적혀 있었다. 외꺼풀이었던 눈에 쌍꺼풀이 진하게 잡혔다.

[패티 - 양지 48g, 목살 52g, 어제보다 잘게 다져보기. 미디엄보다 덜 굽기. / 속 재료 - 가지, 강낭콩, 고사리 테스트.]

커다란 냉장고 옆에 작은 냉장고가 하나 더 있었다. 적우는 작은 냉장고를 열었다. 다양한 부위의 소고기, 온갖 채소, 번, 조미료가 들어차 있었다. 그는 양지와 목살을 꺼냈다. 살과 지방의 색깔이 선명했다. 그는 고기를 칼로 잘게 다지고, 두 부위를 저울에 올려 무게를 맞춘 후에, 한 데 섞어 둥글게 뭉쳤다.

패티가 철판에 올라갔다. 프레스로 누르고 소금을 뿌렸다. 타이머로 맞춘 2분 동안, 적우는 신코로 바닥을 때리거나 손으로 조리대를 두드렸다. 알람이 울리자마자 패티를 뒤집었다. 짙은 갈색이었다. 적우는 바삭한 표면을 뒤집개로 두드려보곤, 들어 올려 쓰레기통에 던졌다.

1분 40초로 맞추고 다시 구웠다. 표면이 연한 갈색을 띠었고, 적당히 핏기도 돌았다. 그는 반대 면도 굽고서 접시에 올렸다. 패티를 조금 떼어내 씹었다. 적우는 인상을 쓰고 접시를 집어 쓰레기통 안으로 기울였다. 

… 아마도.

양지를 43g으로 줄이고, 목살을 57g으로 늘렸다. 굽는 시간을 1분 50초에 맞추고 프레스로 살짝 눌러줬다. 적우는 눈을 감고 구워진 패티를 입안에서 굴렸다. 고개를 기울이더니 전에 버렸던 패티를 쓰레기통 안에서 꺼내 먹었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패티를 맛봤다. 그는 미심쩍은 표정을 짓고, 느리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가지를 1cm로 썰어 철판에 구웠다. 번 위에 양상추, 적양파, 패티를 쌓고 구워진 가지를 올렸다. 마지막으로 번을 올려 한입 베어 물었다. 가지는 말캉거렸다. 터진 즙이 다른 재료를 덮었다. 햄버거를 버렸다. 

0.6cm로 썰었다. 일정한 칼질 소리가 울렸다. 탁탁탁탁. 탁탁탁탁. 기름을 두르고 가지를 놓자 기름이 튀었다. 펑. 펑. 

말발굽이 바닥을 구른다. 남자가 고삐를 잡고 달린다. 십수 명이 뒤에서 그를 쫓아온다. 남자는 한 손으로 주머니 속 수류탄을 꺼낸다. 입으로 핀을 물어 뽑는다. 그가 수류탄을 던지자 몇 명이 나가떨어진다. 

적우는 기름을 가득 부었다.

- 아.

적우의 검지와 중지 끝이 부어오르며 번들거렸다. 그는 찬물에 손을 대강 헹구고 조리대로 돌아갔다. 손끝에 물집이 잡히기 시작했다. 0.6cm 가지를 먹어보고 버렸다. 

칼질이 느려졌다. 적우는 가지를 0.3cm로 썰다가 칼을 내팽개쳤다. 그러곤 바로 날을 뒤집어보며 상태를 확인했다.

가지를 쓸어버리고, 그 자리에 강낭콩 통조림을 놓았다. 강낭콩을 체에 붓고, 물로 헹구고, 키친타월로 물기를 제거했다. 그리고 한 알씩 패티 위에 정갈하게 배치했다. 완성된 버거를 조금씩 목 안으로 넘겼다. 부드러웠고, 단맛이 감돌았다. 트림이 나오고 신물이 올라왔다.

적우는 화장실로 가서 변기 위에 상체를 숙였다. 그는 손가락을 넣지 않고도 쉽게 구토를 했다. 분쇄된 햄버거 재료들이 물속에 잠겼다. 재료가 떨어지자 노란 위액만 나왔다. 몸을 세운 적우는 거울을 마주했다. 실핏줄 터진 눈알, 입가에 묻은 토사물, 퀭한 몰골. 눈을 피했다.

얼음을 입에 물고 손을 세 번 씻었다. 냉장고에서 체다 치즈, 모차렐라 치즈, 블루 치즈를 꺼냈다. 치즈를 품에 안고 몸을 조리대 쪽으로 돌렸다.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숨이 불규칙해졌다. 문밖에서 흥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주방 시계가 9시 27분을 가리켰다. 

- 불 좀 켜고 해.

뒷문을 열고 지환이 들어왔다. 그가 형광등 스위치를 눌렀고, 적우는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아직 할 게 많은데.

- 안녕하세요.

손을 떼자 적우의 눈이 가라앉아 있었다. 그는 윗니로 입술 안쪽을 눌렀다.

적우는 작은 냉장고에 싱싱한 재료를 넣고, 큰 냉장고에서 오래된 재료를 꺼냈다. 그는 냉동된 소고기를 그라인더에 넣으며, 주방과 홀 사이를 막고 있는 배식구 유리창을 노려봤다. 


2. 편집


가게는 밝았다. 형광등 아래에선 모든 게 밋밋했다. 

적우는 검은색 베이스볼 캡을 눌러썼다. 그림자가 코까지 드리웠다. 

그는 고깃덩어리 여덟 개를 한 번에 올리고, 한 번에 뒤집었다. 철판 열기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후덥지근한 주방 공기에 눈이 풀렸다. 티셔츠가 마를 새 없이 땀에 절었다. 기다란 갈색 앞치마가 앞을 가려줬지만, 등에 난 땀자국은 드러났다. 둥근 얼룩의 면적이 넓어졌다. 

배식구 유리창 너머로 손님들의 입이 움직였다. 두꺼운 햄버거를 물고, 길쭉한 감자튀김을 넣고, 빨대로 탄산음료를 빨았다. 어떤 사람은 포크에 붙은 양상추를 혀로 핥았다. 적우는 그들의 꿀렁거리는 목을 보다가, 입을 실룩거렸다.

옆에선 지환의 손이 플레이팅을 했다. 접시 위에 해동한 번, 시든 양상추, 무른 토마토를 쌓아두고 패티가 구워지면 그 위에 올렸다. 접시 가장자리에 그려진 토끼는 소금 통과 버터를 들고 팔짝 뛰고 있었다. 지환이 하인즈 버거 소스를 한 바퀴 돌렸다. 토끼 위에 소스가 튀었다. 

지환이 배식구에 접시를 올리고 종을 울렸다. 도연의 펌프스가 따각따각 소리와 함께 다가왔다. 적우는 재빠르게 행주로 토끼를 닦아냈다. 도연이 걸을 때마다 햄버거가 무너졌다. 그녀는 허리를 거의 숙이지 않은 채 접시를 내렸다. 재료들이 사선으로 밀려났다. 손님이 햄버거를 수직으로 맞추며 도연을 쳐다봤다. 그녀는 이미 뒤돌아가고 있었다. 그러자 손님은 유리창을 통해 적우를 노려봤다. 적우는 아랫입술을 내밀었다. 

- 적우 씨. 적우 씨? 적우 씨!

철판 귀퉁이를 보던 적우가 고개를 들었다. 도연이 배식구 사이를 두드리고 있었다. 적우는 그녀의 어깨를 보며 대답했다. 

- 네?

- 그분 오셨어요. 단골. 

홀을 살피던 적우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적우는 작은 냉장고로 달려가 재료를 꺼냈다. 그는 버터로 구운 번, 단단한 양상추, 빛 좋은 적양파, 저민 블루 치즈, 1분 50초 구운 패티, 통조림 강낭콩을 조립했다. 옆에서 지환이 뭐라고 말했다. 적우는 제대로 듣지 못했다.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하고, 햄버거를 반으로 갈랐다. 그는 모자챙을 올리고, 접시를 들었다.

- 맛있게 드세요. 

적우가 말했다. 남자 손님은 희고 매끈한 셔츠 소매를 걷어 올리고 있었다. 옆 의자엔 가죽 백팩이 놓여 있었고, 테이블 위에는 두 세트의 식기가 차려져 있었다. 남자가 햄버거를 보고 뭔가 말하려 우물거렸다. 적우는 접시를 내려놓고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 오늘 아침에 개발한 거예요. 도전적이지만, 그래서 새로운…. 아니, 설명보다, 한번 드셔보실래요?

남자는 가게 문을 몇 차례 돌아봤다. 그러다 적우의 눈을 봤고, 어물쩍 햄버거를 집었다. 그는 작게 한 입 베어 물었다. 

- 독특하네요. 단맛도 나고. 콩인가요?

- 알아주시네요. 강낭콩 통조림이에요. 얼마 전에 좋은 식당에 갔거든요. 강낭콩과 블루 치즈를 섞은 샐러드가 나오더라고요. 괜찮아서 응용해 봤어요. 

- 소스는 없네요. 

- 부족한가요? 전 강낭콩만으로도 과하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확실히 소스를 넣어야 사람들이 좋아하겠죠? 으음. 만약 한다면 매운 계열로….

- 민준아!

가게에 들어온 여자가 외쳤다. 적우는 주위 테이블을 두리번거리고, 하던 말을 이으려 숨을 마셨다. 남자 손님이 목소리를 향해 몸을 틀었다. 여자가 다가와 남자와 인사를 나눴다. 적우는 두 사람 얼굴에 핀 미소를 봤고, 몸을 일으켰다. 여자는 적우가 있던 곳에 앉았다. 적우는 그녀와 눈인사를 하고, 남자에게 말했다.  

- 같은 거로 하나 더 드릴까요?

- 아뇨. 오늘은 기본으로 두 개 주세요. 얘가 그걸 좋아해서요. 

- 네. 맛있게 해드릴게요. 

적우는 눈웃음을 지으며 접시를 집었다. 햄버거에 난 작은 잇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여자가 긴 머리칼을 들어 땀을 식혔다. 그녀가 말을 덧붙였다. 

- 저기요. 

- 네. 

- 물도 주실래요?

- 음료수 서비스로 드릴게요. 도연 씨, 콜라 두 개 제 앞으로 달아주세요. 

뒤에서 두 사람이 속닥거리다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적우는 모자를 눌러쓰고 패티 두 개를 철판 위에 올렸다. 지환이 손목을 문지르며 적우에게 말했다. 

- 봐 봐. 내가 말했지? 나 어릴 때랑 똑같다니까. 

밖이 저물었다. 손님들은 맥주를 곁들이며,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스포츠 경기를 시청했다. 지환도 그들과 함께 앉아 있었다. 도연은 카운터 앞에 앉아서 휴대폰을 두드리며 킥킥거렸다. 적우는 철판 앞에 서서 가게 문을 주시했다. 발 옆 날로 서거나, 다리 무게 중심을 한쪽씩 옮기면서. 

검정 봉지를 든 여자가 가게 문을 열었다. 건조하게 센 머리카락이 얼굴에 붙어있었다. 철판에 기름을 칠하려던 적우의 손이 멈췄다. 여자가 봉지에서 은박지로 감싼 원통을 꺼냈다. 그녀는 한 손님에게 그것을 내밀었고, 손님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여자가 옆 테이블로 갔다. 이번 손님은 오천 원과 원통을 맞바꿨다. 그는 포장을 열어 김밥을 먹었다. 그러더니 옆 사람에게도 권하며 말했다. 

- 맛있어. 

적우는 발을 뗐다. 

환호성과 욕설이 터졌다. 몇몇이 벌떡 일어나 주먹을 휘둘렀다. 적우는 움찔했고, 여자는 들고 있던 김밥을 떨어트렸다. 그녀는 주춤주춤 벽에 붙었다. 그리고 사람들을 따라 텔레비전을 올려봤다. 굽은 허리와 목이 채 펴지지 않았다. 적우는 숨을 길게 뱉었다. 지환에게 등을 지고, 여자를 가리며 움직였다. 그는 김밥을 주워 여자에게 갔다. 

- 이거 하나 주세요. 

  적우는 지갑에서 오천 원을 꺼내 건네고, 은박지를 열었다. 표면에 참기름이 반들반들 칠해져 있었다. 그는 김밥 하나를 입에 넣고, 말했다. 

- 참치랑 묵은지 넣으셨네요. 김도 좋은 거 쓰시고. 맛있는데요. 

- 김치 직접 담근 거예요. 

여자는 웃었다. 눈가와 입가에 얇은 주름이 여러 갈래 잡혔다. 적우도 작게 웃었다. 발치에 은박지로 만든 공이 굴러왔다. 먼저 김밥을 샀던 손님이 공을 주우며 여자에게 말을 걸려 했다. 적우가 말했다. 

- 남은 거 다 주세요. 계좌 이체도 돼요?

아이스 팩이 들어있어, 봉지는 묵직했다. 여자가 고맙다며 허리를 연신 숙였다. 비닐 끈이 손가락 마디 안을 파고들었다. 

적우는 주방에 있는 통돌이 세탁기에 앞치마를 넣었다. 도연이 다가와 행주 몇 개를 안에 떨어트렸다. 적우가 옆으로 비켜섰지만, 도연이 다시 거리를 좁혔다. 털이 스쳤다. 냉장고를 확인하던 지환이 검정 봉지를 꺼내며 말했다. 

- 이게 뭐야?

- 아까 할머님 오셔서 샀어요. 드세요. 

- 언제 왔데. 이런 거 사주면 안 돼. 또 온다고. 

지환은 김밥을 먹어보더니 도연에게도 한 줄 줬다. 

- 맛은 있네. 다음부터는 사지 마. 하여튼 문제다. 사람이 좀 영악할 줄도 알아야 하는데. 

적우가 미소를 지었다. 도연이 코웃음을 쳤다. 적우는 놀란 눈으로 그녀를 돌아봤다. 도연이 김밥을 오물거리며 이죽댔다. 단무지 씹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적우는 캄캄한 가게에 혼자 남아, 통돌이 안을 들여다봤다. 앞치마와 행주가 소용돌이치며 돌아갔다. 오물이 빠져나오며 비눗물을 더럽혔다. 

- 뭐 하세요?

어둠 속에서 도연의 목소리가 나왔다. 적우는 화들짝 놀라 주저앉았다. 다리에 힘이 풀려, 바로 일어설 수 없었다. 적우는 도연을 올려봤다. 딱 맞는 청바지와 티를 입고 있었다. 도연이 손에 쥔 휴대폰을 흔들었다. 

- 폰을 두고 가서. 그 샐러드가 그렇게 맛있어요?

- 샐러드요? 무슨….

- 아까 콩이랑 치즈랑 해서 나왔다고 했잖아요. 좋은 식당이었다고. 

- 아, 괜찮았어요. 샐러드 좋아하시나 봐요. 

- 네. … 누구랑 갔어요? 

- 친구랑 갔죠. 

지수. 연재였나? 

- 여자요, 남자요?

- 기억 안 나요. 식당 이름 알려 드릴까요?

도연은 적우를 응시했다. 적우도 그녀를 바라봤다. 눈싸움에서 진 적우가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연이 사뭇 낮게 말했다. 

- 너무 그러지 마요. 

- 뭘요?

- 걱정돼서 그래요. 

- 제가 뭐 잘 못했어요?

도연은 적우의 깊어진 미간 주름을 보고, 말을 말았다. 그녀는 그의 팔을 지그시 누르고, 뒷문으로 나갔다. 세탁기가 탈수 모드로 바뀌며 덜거덕거렸다. 

집에 온 적우는 엉겨 붙은 머리칼을 위로 넘기고, 맥북을 켰다. SD 카드를 리더기에 넣고, 프리미어 프로를 켜고, 영상을 옮겼다. 그리고 하루를 빨리감기하며 돌아봤다. 


# 적우가 강낭콩 버거를 들고 가쁘게 주방으로 돌아온다. “나 어릴 때랑 똑같다니까.” 지환은 그렇게 말하고 휴대폰을 본다. 자동사냥 RPG가 켜져 있다. 적우는 강낭콩 버거를 먹어본다. 턱을 움직이며 유리창 너머를 노려본다. 그러다 버거를 눌러 으스러트린다. 그가 작게 중얼거린다. 


적우는 영상을 멈추고 화면을 확대했다. 해상도가 낮아지면서 노이즈가 드러났다. 그는 소리를 키우고, 자기 입 모양에 집중했다. 

- 흐린, 등심, 디쉬, 아닌데. 아, 등신. 등신이구나. 

트랙패드를 쓸어 화면을 옆으로 옮겼다. 지환은 휴대폰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적우는 커서를 면도칼 모양으로 바꾸고, 그 장면을 잘라냈다. 


# 주방에서 적우가 김밥을 먹는다. 한 알, 한 알. 반 줄 정도 먹었을 때 손에 김밥을 뱉는다. 손가락으로 헤집어 달걀 껍데기를 찾아낸다. 쓰레기통에 김밥을 처넣는다. “이런, 씨발.” 그는 손 냄새를 맡더니 두 차례 씻는다. 


그 장면도 면도칼로 잘라냈다. 

영상 속 적우는 땀을 닦으려 가끔 얼굴을 들었다. 그럴 때마다 지환과 도연을 향한 눈초리가 렌즈에 찍혔다. 적우는 그 순간들도 빠짐없이 찾아서 잘랐다. 적우는 얼굴을 잔뜩 구겨 풀어주고, 부드러운 표정을 지어봤다. 

그는 전체 영상 클립을 파란색으로, 자른 컷은 노란색으로 표시했다. 노란 컷은 [NG] 폴더 속으로 들어갔다. 클릭이 반복됐고, 눈꺼풀이 내려앉았다. 눈 감기는 시간이 점차 길어졌다. 적우는 꾸벅거렸다. 

시퍼런 물 한가운데에 서서 위를 올려본다. 거대한 등대가 노란빛을 내뿜는다. 강한 빛줄기가 적우 얼굴에 내린다. 눈이 부시다.

부서진다. 

재생 바는 멈추지 않고 움직였다. 

그는 영상을 깔끔하게 자르고 붙였다. 종일 비슷한 자세로 서 있어 어렵지 않았다. 작업을 마친 적우는 편집된 영상을 처음부터 재생했다. 

한 곳의 연결점이 튀었다. 주방 입구에 무언가가 갑자기 생겨났다. 적우는 화면을 키우고, 밝기를 높였다. 그리고 방향키를 눌러 프레임 단위로 영상을 확인했다. 


# 주방 입구 그림자 안에서 뭔가 움직인다. 형체를 알아보기 어렵다. 곧 안광이 보이고, 긴 머리카락이 보인다. 형체가 주방 안쪽으로 몸을 기울인다. 신체 반절이 드러난다. 도연이다. 도연은 적우를 살피다, 캠코더를 향해 손가락으로 브이를 만들어 보인다. 


타임라인을 확인해 보니, 적우가 김밥을 버린 직후였다. 적우는 헛웃음을 쳤다.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3. 지네



적우는 불현듯 잠에서 깼다. 냉장고 전자음이 방 안을 채웠다. 

에어컨 바람이 찬데도, 몸이 달았다. 그는 늘어난 티셔츠 앞섶을 흔들다 벗어던졌다. 위액이 올라와 가슴팍이 쓰렸다. 텅스텐 무드 등을 켜고, 바닥에 있던 2L짜리 생수병을 집었다. 적우는 꿈의 마지막부터 되짚어갔다. 

감자튀김 기계에서 알림음이 삐삐 울리고 있었다. 지환이 [건조 양파] 라벨지가 붙은 베이지색 원통을 열었었다. 거칠게 갈린 뼛가루가 담겨 있었다. 알림음은 원래 심전도 모니터에서 나오던 소리였다. 병원 침대에 적우가 누워있었다. 

전엔 자취방 침대였다. 적우는 혀를 내밀고 캑캑거렸었다. 도연이 무게를 실어 목을 눌렀었다. 그녀는 올라타기 전, 행거 아래 숨겨둔 성인용품을 들고 깔깔댔었다. 그전엔 벽에 튄 라면 국물을 보며 군소리를 했었는데, 그때는 임대인이었다.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했지만, 허리는 꼿꼿했다. 그녀는 잠긴 문을 쾅쾅 치다 마스터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들어왔었다. 적우는 옴짝달싹 못 한 채 도어록 소리를 들어야 했었다. 

전에는 2층 침대였다. 적우는 친구와 이불 안에서 부스럭거렸었다. 친구는 얼굴 윤곽만 있고, 이목구비는 보이지 않았었다. 그들이 보던 PMP 화면 속 괴물이 엑스트라들을 마구 죽였었다. 캄캄한 옆 침대에서 누군가 그들을 보고 있었다. 

냉장고 전자음이 멈췄다. 적우는 몸을 뉘었다. 위를 보고 있으니 팔다리가 저렸다. 모로 누우면 다리가 아팠다. 끈적한 피부에 닿는 이불 감촉이 불쾌했다. 냉장고가 다시 웅웅거렸다. 적우는 이불을 차고 일어났다. 

냉장실엔 써머스비 맥주 두 캔, 냉동실엔 벤앤제리스 아이스크림 한 통이 있었다. 적우는 아이스크림을 꺼내고 냉장고 코드를 뽑았다. 사위가 순간 조용해졌다. 얼마 지나자 다른 소음이 의식됐다. 그는 제습기, 공기청정기, 선풍기, 에어컨을 껐다. 조용해졌다. 간간이 집 밖에서 발걸음 소리와 차 소리가 들려왔다. 

적우는 식기 건조대를 살폈다. 중식도, 정육도, 곡선 가위가 있었다. 다양한 모양의 접시, 포크, 나이프, 숟가락도 하나씩 있었다. 싱크대엔 배달 음식 용기가 여러 층 쌓여있었는데, 음식물이 많이 남아 있었다. 적우는 숟가락을 물고 책상 앞으로 가 앉았다. 그는 아이스크림을 뜨면서 상상했다. 

도도새가 그려진 간판. 그 아래로 열 명… 아니, 열다섯 명의 사람들이 번호표를 들고 있다. 안으로 들어가면 손님이 가득하다. 배달 주문 알림음은 들리지 않는다. 주방과 홀 사이엔 낮은 벽만 있다. 패티를 구우며 앞에 있는 손님과 안부를 주고받는다. 한쪽엔 도도새 인형과 도도새가 그려진 티셔츠가 전시되어 있다. 친구들이 들어온다. 가게를 보며 감탄한다. 

적우는 맥북을 열고 유튜브를 켰다. 검색창에 [성공한 햄버거집]을 입력했다. [뉴욕 유학파 햄버거 요리사], [연 매출 200억 브랜드 만들기]를 지나자, [시골에서 대박 난 버거집 스토리]가 나왔다. 업로드 날짜가 3년 전이었고, 조회수는 839였다. 적우는 가방에서 4색 볼펜과 스토리보드 노트를 꺼냈다. 그는 영상을 보며 메모했다. 

[인테리어는 컨셉. 색감과 디자인. / 요즘 수제 버거는 수제 X, 자동화 O. 새우 버거 인기.]

적우는 마지막 줄을 휘갈겨 쓰고, 영상 속 간판 이름을 검색해 봤다. 얼마 없는 본점의 후기는 2년 전이 마지막이었다. 같은 이름의 가게가 합정동에도 있었다. 치킨 버거가 시그니처 메뉴였고, 후기가 많았다. 적우는 영상을 끄고, 노트를 넘겼다. 깨끗한 종이가 나왔다. 그는 다리를 떨면서 볼펜을 물었다. 몸이 여전히 뜨거웠다. 입안에서 플라스틱이 부서졌다. 

VPN 프로그램을 켜고, 포르노 사이트에 들어갔다. 그는 검색창에 Hidai를 쳤다. 다양한 자세의 Hidai가 주르륵 나왔다. 그의 곁에 있는 남자들 얼굴이 계속 바뀌었다. 적우는 하나를 눌렀다. 턱을 괴고 재생 바를 빠르게 넘겼다. Hidai가 인터뷰를 하고, 옷을 벗고, 성행위를 하고, 성행위를 마쳤다. 적우는 창을 하나 더 열어서 Hidai를 입력했다. 스크롤을 한참 내리니, Hidai가 여자와 있는 섬네일이 보였다. 적우는 창 두 개를 양쪽에 띄워놓고 동시에 재생했다. 그는 바지를 내리면서 아래쪽을 보지 않았다. 


# 남자가 Hidai를 침대에 앉힌다. 남자가 Hidai의 몸을 핥는다. Hidai는 남자 아래로 간다. 자기 허벅지를 잡고 버틴다. 얼굴에 붉은 선이 올라온다. 

# Hidai가 여자를 침대에 눕힌다. Hidai가 여자의 몸을 핥는다. Hidai는 여자 위로 간다. 여자의 허벅지를 잡고 민다. 쇄골 부근에 붉은 점이 올라온다.  


적우는 Hidai만 보며, 오른손을 위아래로 움직였다. 왼손으론 몸을 더듬었다. 그러다 그는 손 위치를 바꿨다. 


# 남자가 빠르고 세게 움직인다. Hidai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끙끙거린다. Hidai가 아파한다. 

# Hidai가 빠르고 세게 움직인다. 눈 높이에 있는 벽을 보며 끙끙거린다. 여자가 아파한다. 


적우의 손이 멈췄다. 그는 영상을 넘겼다. Hidai가 경련을 일으키며 몸을 늘어트릴 때, 적우의 팔꿈치가 벤앤제리스 통을 쳤다. 녹은 아이스크림이 쏟아졌다. 적우는 손바닥을 배에 가져다 대서, 흐르는 반고체를 막았다. 그는 휴지로 몸을 닦고 윗옷을 입었다. 

적우는 잠시 지쳤다. 치워 둔 노트를 앞으로 가져왔다. 

검은색 심을 눌렀다. 왼쪽에 동그란 테이블과 곡선 프레임 의자를 그렸다. 오른쪽엔 [초록 : 희망, 자유 | 빨강 : 욕구, 열정 | 파랑 : 진실, 평화]를 적었다. 그림 위에 볼펜 끝을 대고 심을 바꿨다. 초록. 빨강. 파랑. 빨강. 초록. 펜을 내려놓고 옥상으로 나갔다. 

적우는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연초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는 연기를 몇 모금 마시다, 반도 타지 않은 꽁초를 림 볼에 버렸다. 그리고 집 안으로 달려갔다. 

검은색 심을 눌렀다. 왼쪽에 네모난 테이블과 직각 프레임 의자를 그렸다. 오른쪽엔 [흑백 : 이성, 절제]를 썼다. 그리고 이어 적었다. [흑백 영화 포스터 부착 | 400번의 구타, 모던 타임즈, 하녀, 로마…] 종이를 뒤로 넘겼다. 그는 사각형 안에 점을 찍었다. 점이 사각형을 채웠다. 옥상으로 나갔다. 

라이터 불이 자꾸 꺼져 부싯돌 휠을 내리 돌렸다. 굳은살 박인 엄지에 검은 가루가 묻어났다. 그는 연기를 깊이 마시고 고개를 치켜들었다. 거대하게 솟은 자이 아파트가 시야를 막았다. 수백 개의 창문이 깜깜했지만, 몇 개는 불이 켜져 있었다. 한 곳 안에서 사람 그림자가 움직였다. 적우는 몸을 뒤로 돌려 옥탑방 그림자 안으로 숨었다. 구석에 치워진 먼지 쌓인 바비큐 그릴과 녹슨 오븐이 보였다. 

자야 하는데.

침대에 걸터앉았다. 여전히 더웠다. 무드 등이 만든 주황색 원이 곰팡이 핀 천장을 물들였다. 그는 책상 위에 펼쳐 놓은 노트를 봤다. 빈 사각형. 빈 줄. 적우는 주먹을 들어 올렸다. 복부를 쳤다. 거친 기침이 나왔다. 그는 한 번 더 팔을 올려, 힘껏 내리쳤다. 조준을 잘못해서 명치께에 맞았다. 허리가 안으로 구부러졌다. 숨은 빠져나가기만 했다. 겨우 숨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적우는 상체를 뒤로 젖혔다. 벽에 붙은 얼룩이 꿈틀거렸다.

손가락 두 마디만 한 지네였다. 몇십 개의 다리가 유연하게 움직였다. 적우는 사색이 되어, 뒤집힌 시선으로 지네를 지켜봤다. 지네는 부지런히 가다가도 우뚝 멈췄다. 그러다 다시 방향성 없이 돌아다녔다. 지네가 침대 헤드 뒤로 사라지는 걸 보고 나서야, 적우는 침대에 누웠다. 

눈을 감은 지 한 시간 만에 몽롱해졌다. 각종 가구와 포스터가 옅어졌다. 눈꺼풀 아래 눈알이 느려졌다. 

종아리가 간질거렸다. 적우는 파닥거리며 일어나, 팔다리를 흔들었다. 이불도 들어서 털어냈다. 지네는 보이지 않았다. 적우는 그 과정을 세 번 반복하다, 겨우 선잠에 들었다. 그리고 얼마 후, 알람 소리에 꿈틀거렸다. 


4. 소스



- 괜찮아요?

적우가 물었다. 지환이 음식을 삼키더니, 사이를 두고 말했다. 

- 맛있어. 

치솟았던 적우의 어깨가 처졌다. 그는 햄버거 반절이 담긴 접시의 가장자리를 만지작거렸다. 도연이 주방으로 들어와 인사했다. 적우는 시선을 바닥으로 돌렸다. 도연이 햄버거를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그녀가 오물거리며 말했다. 

- 뭐 넣은 거예요?

- 시금치요. 두부랑 섞었어요. 

- 어쩐지, 쓰더라. 

- 써요?

적우는 도연과 눈을 맞췄다. 도연의 광대뼈가 올라갔다. 그녀가 번을 들췄다. 다진 시금치와 두부가 엉겨있었다. 적우가 말했다. 

- 그럼 안 되는데. 

- 삶는 시간을 줄여보세요. 

- 열 번 해보고, 제일 나은 걸로 한 거예요. 

- 참기름을 줄여봐요. 많이 넣으면 쓰거든요. 

- 안 넣었어요. 

- 그럼 뭐가 문제지? 쓴 햄버거는 난생처음인데. 

도연은 조리대에 팔을 걸치고 툭툭 말했다. 그녀가 믹싱 볼에 남아 있는 시금치를 검지로 빙빙 돌렸다. 적우의 어금니 옆이 볼록 튀어나왔다. 

- 시금치가 원래 쓰지, 그럼. 당연한 거 아니야? 맛있다니까. 잘했어. 이제 준비하자. 

지환이 적우의 뒷덜미를 손바닥으로 주물렀다. 적우는 무릎을 구부려 그의 손길을 피했다. 

가게 문 앞에 걸린 [CLOSE] 팻말이 뒤집혀 [OPEN]이 되었다. 적우가 책상을 닦는 도연에게 머뭇머뭇 다가갔다. 그는 다른 곳을 보며 작게 물었다.  

-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도연이 행주를 놓고 몸을 돌렸다. 샴푸 냄새가 풍겼다. 적우는 잠깐 어지러웠다. 도연이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말했다. 

- 갈아 넣는 건 어때요? 시금치 페스토 빵에 발라 먹으면 맛있는데. 

- 그건 안 돼요. 재료 형태는 가능한 한 남아 있어야 해요. 

- 흠, 나름 원칙도 있어요?

적우는 입술을 깨물었다. 입술 색이 하얗게 변했다. 도연이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 장난이에요. 아, 좋은 생각 났어요.  

적우의 입술이 도로 붉어졌다. 그는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 알려줄 테니까, 밖에서 한번 봐요. 

적우가 몸을 뒤로 뺐다. 도연이 볼을 부풀렸다. 그녀가 힘을 주고 말했다. 

- 그냥 친해지고 싶어서요. 친구로. 

- 혼자 해 볼게요. 생각해 줘서 고마워요. 

- 재미없게 사네. 

주방으로 가던 적우는 도연에게 돌아왔다. 도연이 혀를 빼물었다. 적우가 한쪽 눈썹을 올리며 말했다.  

- 저번부터. 

- 이런 목소리로 말할 수도 있구나. 

도연은 얼굴을 젖히고 적우를 내려봤다. 적우의 입술이 안으로 말렸다. 도연이 말했다. 

- 별것도 아닌 걸로 그렇게 화를 내고 그래요. 누가 죽은 것도 아닌데. 

적우의 입에서 숨이 새 나왔다. 도연은 말을 이었다. 

- 제가 뭐 한대요? 그냥 보자고요. 방법이 궁금하지 않으세요?

적우는 고민했다. 도연은 그를 자세히 살피다, 그가 눈을 들자 딴청을 피웠다. 적우가 말했다. 

- 그래요. 뭔데요?

- 소스를 뿌려보세요. 단맛 나는 걸로. 자몽처럼?

- 그런, 당연한 걸….

적우는 얼핏 떠올렸다. 갈색 소스에 흠뻑 적셔진 파채. 시큼한 냄새, 씁쓸한 단맛. 도연이 말했다. 

- 이번 주 쉬는 날 봐요.

적우는 틈날 때마다 소스를 만들었고, 새끼손가락으로 찍어 맛을 봤다. 식초, 흑설탕, 백설탕, 쯔유, 간장, 고추장이 조리대 위에 하나씩 올라왔다. 손가락이 아렸다. 

2시 55분, 적우는 가게 문 앞에 [브레이크 타임] 표지판을 세웠다. 주방으로 돌아오자 휴대폰을 보던 지환이 말했다. 

- 수민이 할아버지 돌아가셨다네.

- 연락 왔어요? 저한텐 안 왔는데. 

- 인스타에 올렸어. 장례 중이라고. 

말 없이 계량컵에 데리야키 소스를 붓던 적우의 눈이 문득 커졌다. 그는 앞치마 끈을 풀었다. 도연이 주방 입구에 기대서 물었다. 

- 누구예요?

- 적우 대학 동기. 너 오기 전에 일했었어. 

- 남자예요, 여자예요?

- 그게 그렇게 중요해요?

적우가 말했다. 도연이 콧잔등을 찡그렸다. 

- 그냥 물어봤어요. 많이 친해요?

적우는 조용히 주방화를 벗었다. 그리고 운동화를 신으며 “네”와 “에” 사이 발음으로 대답했다. 

적우는 장례식장 건물 앞에 서서, 자갈에 흰색 운동화를 비볐다. 두꺼운 검은색 청바지와, 검은색 긴소매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목 주위로 봉제선이 드러났고, 가슴 쪽에 뒤집힌 브랜드 로고가 살짝 비쳤다. 정장 입은 사람들이 적우를 지나쳐갔다. 적우의 발이 주저거렸다. 그때 산발을 한 수민이 문으로 나왔다. 피부 화장이 하얗게 떠 있었고, 입술이 빨갰다. 적우가 몸을 틀려 할 때, 수민이 적우를 발견했다. 그가 적우에게 뛰어왔다. 

- 형! 

- 안녕. 

- 연락도 따로 못했는데. 조부모님이라서. 

- 인스타가 연락이지, 뭐. 

- 담배 피울래?

- 방금 폈어. 나 화장실 좀 들렀다 갈게. 

적우는 따뜻한 물을 틀고 손등을 가져다 댔다. 치켜진 몸이 풀어졌다. 마개를 닫고 손잡이를 반대로 돌렸다. 찬물이 차올랐다. 물이 오버플로 구멍까지 올라오자, 수위는 더 높아지지 않았다. 적우는 양손으로 세면대를 잡고 얼굴을 물에 담갔다. 숨이 멈췄고, 눈이 떠지지 않았다. 심장이 크게 뛰었고, 손가락이 뒤틀렸다. 적우는 마지막까지 버티다 얼굴을 뺐다. 앞 머리카락과 얼굴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거울은 보지 않고 나갔다. 

적우는 부조금 봉투에 오만 원짜리 한 장을 넣었고, 한 장을 더 넣었다. 

적우는 유가족을 힐끗하고 제단에 국화꽃을 놓았다. 그리고 뒤로 돌아와 다리를 굽혔다. 수민과 그의 아버지가 묵례했다. 적우는 다리를 펴고 목을 숙였다. 눈을 꽉 감고 목을 더 깊이 숙였다. 그러다 유가족보다 늦게 고개를 들었다.

식당에 들어가 앉자, 직원이 식사를 내줬다. 수민이 적우 맞은편에 앉았다. 흰자가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 눈 주위 화장이 지워져, 원래 피부색이 드러났다. 

- 와줘서 고마워, 형. 

- 아니야. 진짜 아니야. 

적우는 흰밥을 크게 한 숟가락 떴다. 플라스틱 숟가락이 휘었다. 목이 막혀 물과 함께 밥알을 삼켜냈다. 수민이 하품을 했다. 적우가 말했다. 

- 피곤하지. 

- 힘들어 죽겠어. 하는 게 너무 많아. 울 시간도 안 줘. 막 편지도 읽고, 기도도 하고, 찬송도 하고. 수련회 하는 거 같아. 

수민이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 적우는 수민을 따라 미소를 지었다가, 수민의 얼굴이 굳어지는 걸 보고 웃음기를 지웠다. 수민 뒤 모니터에 고인의 사진이 떴다. 적우가 물었다. 

- 가까운 사이였어?

- 응. 어릴 때 할아버지 집에서 자랐거든. 부모님보다도 더 오래 지냈어. 

- 어떻게…?

- 나이가 많으셨어. 우리 아빠가 막내. 

- 그럼 자연사이신가?

- 으음, 지병이 있으셨어. 쓰러지고 며칠 후에 돌아가신 거야. 난 노느라 못 봤어, 그때.  

수민의 눈이 젖었다. 적우는 마른침을 삼켰다. 

- 많이 힘들겠다. 

- 그래도 형이 와줬잖아. 친한 친구들도 거의 안 왔는데. 

적우는 나무젓가락으로 멸치볶음 몇 개를 떼어 먹었다. 방황하던 젓가락이 시금치 무침 위에서 멈췄다. 빈소 쪽이 웅성거리더니, 누군가 수민의 이름을 불렀다. 수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 가봐야겠다. 밥 잘 먹고 가. 와줘서 고마워. 

- 저, 그…, 그….

적우는 뭉그적거리며 일어나다가, 무릎으로 식탁을 쳤다. 육개장이 비닐 식탁보 위에 튀었다. 적우가 말을 꺼냈다. 

- 그게 뭐였지?

- 응? 뭐?

- 그거 있잖아, 그거. 

수민의 발바닥이 빈소를 향해 돌아갔다. 발이 위로 떴다. 적우가 단번에 말했다. 

- 너 파채 할 때 만들었던 소스. 

말이 돌아오지 않았다. 적우의 목소리가 가늘어졌다.

- 밥 먹다 갑자기 생각나서. 그때 좋았는데, 그치. 너랑 일할 때가 재밌었어. 

적우는 혀로 입술을 적시며 자기 발끝을 봤다. 매끈한 검정 양말 안에서 발가락이 힘겹게 꼼지락거렸다. 적우는 천천히 몸을 세웠다. 수민이 먼 바닥을 보고 있었다. 수민의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 형. 

- 응. 

- … 왜 그래. 

수민은 목을 가다듬고, 적우를 보지 않은 채 말했다. 

- 레몬즙, 레몬 제스트, 매실액, 고춧가루, 올리브 오일. 됐지?

적우는 떨리는 손가락을 접어가며 재료를 되뇌었다. 그를 지켜보던 수민이 한숨을 쉬고 말했다.

- 비율도 알려줘?

- 그, 그럼 좋지. 

수민은 부조금 봉투와 사인펜을 가져와 재료 비율을 적었다. 적우는 펜촉의 움직임을 바라봤다. 메모를 마친 수민이 봉투를 적우에게 건넸다. 손이 스치자 적우가 움찔하며 손을 뺐다. 수민이 말했다. 

- 잘 가. 

- 응. 잘 추스르고, 나중에….

적우는 늘어진 수민의 등을 보고, 뒷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적우는 봉투를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나가려는데, 식사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자리에 앉았다. 밥과 육개장을 떠먹었다. 수육에 새우젓을 얹어 먹었다. 중간중간 주위를 둘러봤다. 그를 보는 사람은 없었다. 적우는 애호박전, 멸치볶음, 오징어젓갈도 깨끗하게 비워냈다. 시금치 무침만 접시 위에 남았다. 적우는 물이 든 종이컵을 들었다. 손이 떨려, 컵이 식탁에 떨어졌다. 그는 휴지로 육개장과 섞인 물을 닦고, 서둘러 나가 신발을 구겨 신었다. 

그는 돌아와 소스를 만들었다.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 조리대에 허벅지를 찧고, 팔레트에 손등을 긁었다. 캠코더 렌즈에 그가 반사됐다. 

라스트 오더 시간이 지나갔다. 적우는 버거에 시금치를 올리고 소스를 부었다. 햄버거를 반으로 잘라 나눠 담고, 남아 있는 두 테이블에 접시를 냈다. 메모지와 펜도 함께 줬다. 

- 새로 개발 중인 메뉴입니다. 드셔보시고 솔직하게 평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적우는 손님에게 생글거리며 말하고, 허리를 폈다. 가게 유리 벽 뒤에 누가 서 있었다. 내부가 반사되어 선명히 보이지 않았다. 적우와 같은 위치에 있어서 더욱 그랬다. 적우가 계속 쳐다보자, 그는 자리를 피했다. 

적우는 홀을 지켜봤다. 한 테이블엔 남녀가 있었다. 여자는 햄버거를 금세 먹어 치우고 메모지에 글을 휘갈겨 썼다. 남자는 케첩을 듬뿍 뿌려 먹었다. 여자가 말했다. 

- 이따 갈 때 치킨 한 마리 사 가자. 드라마 보면서 먹게. 

다른 테이블엔 남자와 아이가 있었다. 남자가 아이에게 햄버거를 권했지만, 아이는 공룡 장난감만 가지고 놀았다. 남자가 먼저 햄버거를 먹어보고 말했다. 

- 먹어봐, 시현아. 맛있다.

- 싫어. 

- 이거 먹으면 파라푸수처럼 클 수 있어. 

- 파라사우롤로푸스야. 

- 응. 그거처럼. 시현이도 엄청 커질 수 있어. 

아이는 책상 위에 공룡을 놓고 움직이다가, 작은 팔을 뻗어 공중에서 흔들었다. “우앙우앙”이라고 말하며 남자의 팔을 툭툭 쳤다. 그러더니 마구 웃었다. 아이는 한참 자지러졌고, 그를 보던 남자는 아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이가 공룡을 품에 안았다. 그리고 머리 볏을 쓰다듬었다. 

도연이 식기와 메모지를 모아서 싱크대로 가져왔다. 한 접시 위에 시금치 버거 반절이 그대로 있었다. 적우가 버거를 버리려고 하자, 도연이 덥석 잡았다. 그녀는 버거를 먹으면서 메모지 내용을 읽었다. 

- 너무 맛있어요. 뭐야, 이게 다야? 그리고 다음 건… 시금치 맛이 특이하지만, 매력이 있습니다. 소스가 한몫하는 거 같아요. 좋네요. 그리고 다음 건… 빈 종이네.

도연은 묵묵히 설거지하는 적우를 보다 말했다. 

- 주머니에 넣어 드릴까요?

- 버려주세요. 

- 왜요. 좋은 말도 있는데. 맛있어요. 제 말이 맞죠? 

도연은 적우 바지 주머니에 손을 댔다. 적우가 숨을 들이마시며 도연을 봤다. 도연은 그의 주머니에 메모지를 쑤셔 넣었다. 

적우는 뒷문으로 나갔다. 문에 기대앉아 담배를 물었다.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는데, 종이 뭉치가 딸려 나왔다. 구겨진 종이를 하나씩 폈다. 도연이 읽어준 메모지를 넘기자, 레시피가 적힌 부조금 봉투가 나왔다. 그것도 넘기자, 빈 메모지가 나왔다. 공룡 발자국 모양의 갈색 얼룩이 찍혀 있었다. 그는 종이를 만지작거렸다. 물방울이 종이 위로 똑똑 떨어졌다. 얼룩이 번졌다. 

별것도 아닌…. 

열이 났다. 여기저기가 욱신거렸다. 적우는 몸을 더듬었다. 문이 열렸고, 문에 밀려 넘어졌다. 지환이 바닥에 웅크린 적우를 보고 놀라 말했다.

- 너 왜 그래, 괜찮아?

- 네. 

- 집에 갈래? 

- 싫어요. … 마무리하고 가야죠. 

- 그래?

- 들어가세요. 제가 할게요. 

따라 나온 도연이 말했다. 적우는 도연을 올려봤다. 걱정스러운 눈. 적우는 한쪽 눈을 찌푸렸다. 일어난 그는 도연의 팔을 지그시 눌렀다. 


5. 물고기



서강대교 초입에 섰다. 난간이 유독 낮았다. 

적우는 난간에 바짝 붙어 밑을 내려다봤다. 오른쪽에 붉은 십자가가 튀어나와 있었다. 숨을 뿜고 눈을 돌렸다. 왼쪽으론 여의도 한강 공원이 보였다. 군중이 웅성거렸다. 떠들고, 웃고, 노래 버스킹을 했다. 적우는 더 깊은 곳으로 걸어 들어갔다. 

보랏빛 하늘 아래 빌딩 무리가 서 있었다. 건물 외벽에 붙은 빨갛고 노란 조명이 빛났다. 손톱보다 작은 창으로 내부가 보였다. 트인 사무실에 직원들이 들어 있었다. 빌딩과 빌딩 사이에 달 모양 열기구가 매달려 있었다. 크고, 둥글고, 샛노랬다. 그 위로 뜬 진짜 달은 작고, 우그러지고, 푸르스름했다. 

반대 차선에서 경적이 울렸다. 회색 택시 한 대가 속력을 늦추고 있었다. 뒤에 오던 운전자가 창문을 내리고 욕설을 질렀다. 택시는 적우와 평행한 곳에서 멈췄다가, 빠르게 사라졌다. 반대편 하늘은 색이 달랐다. 해의 꼭지가 삐죽 남아, 하늘을 주황빛으로 물들였다. 국회의사당 녹색 지붕이 혼자만 환했다. 뒤로 늘어선 건물 무더기는 경계 없이 까맣게 뭉쳤다. 시선을 도로 가져오자, 앞에 설치된 생명의 전화가 보였다. 적우는 녹색 수화기를 만졌다. 그러다 바로 위에 설치된 CCTV를 보고, 손을 뗐다. 외국인 관광객이 몇 명 걸어왔다. 휴대폰을 끼운 셀카봉을 들고 있었다. 그들은 적우를 흘깃하곤, 지나쳐갔다. 적우는 뒤를 돌아 카메라 렌즈 쪽을 잠시 응시했다. 

더 걸었다. 이제 난간 너머로 교회나 공원은 없었다. 작은 숲만 듬성듬성 있었다. 행인도 한동안 보이지 않았고, 차는 순식간에 지나갔다. 초록색 전화기도, CCTV도 없었다. 형광색 게퍼 테이프로 만든 X 표시가 난간에 붙어 있었다. 적우는 주방화를 벗어 발치에 가지런히 정리했다. 난간 상부를 두 손으로 꽉 붙잡았다. 손등 위로 뼈가 불거졌다. 손등과 손등 사이로 X가 보였다. 적우는 테이프를 뗐다. 난간 하부에 발을 올렸다. 몸이 바닥으로부터 떠 올랐다. 도연의 펌프스 소리가 스쳤다. 

약속. 약속을 지켜야 한다. 현우에게 얻어먹은 커피, 경서 결혼식, 사장님 가게 일…. 햄버거, 햄버거도. 좋은 햄버거를 개발해야…. 

그런가?

몸을 숙였다. 시꺼먼 수면이 일렁였다. 비닐봉지와 페트병도 함께 일렁였다. 그는 수면 안을 들여다봤다.

부유하는 몇 구의 시체. 퉁퉁 부은 팔다리, 물고기에게 뜯겨나간 살점, 회전하는 안구. 

떨어진다. 부딪힌다. 파열된다. 차갑다. 놀란다. 허우적거린다. 끌려간다.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 디딜 곳도, 잡을 곳도 없다. 숨을 마신다. 폐로 물이 들어간다. 어두워진다. 보이지 않는다. 

숨이 빨라졌다. 적우는 주먹을 들어 올려 턱을 조준했다. 내려치려는데, 난간에서 미끄러졌다. 그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심장이 날뛰었다. 머리통이 통째로 울렸다. 뒤통수부터 날개뼈까지 찌릿했다. 그는 안간힘을 쓰며 난간에 등을 기댔다. 눈물이 고였다. 시야가 좁아졌다. 하얀 자전거 도로 표시만 선명히 보였다. 그것도 흩어지자, 붉은 우레탄 길만 보였다. 울퉁불퉁한 길이 부풀었다 꺼졌다. 땀이 났다. 식은땀도 났다. 옷이 푹 젖었다. 

- 괜찮으세요?

남자가 가쁜 숨을 뱉으며 적우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적우는 고개를 겨우 돌렸다. 사람 형체가 흐릿하게 보였다. 남자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적우를 들여다봤다. 적우는 팔을 들어 남자를 붙잡으려 했다. 힘이 부족해 손가락만 걸쳐졌다.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적우의 손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남자는 바지 주머니에서 하늘색 바클리즈 틴케이스를 빼내고, 다시 몸을 낮췄다. 그가 뚜껑을 열고 안에서 흰색 알갱이를 꺼냈다. 그리고 적우 얼굴 앞에 들이밀었다. 적우는 눈 하나를 찌푸렸다.

- 신경 안정제예요. 

적우는 입을 벌리고, 어른거리는 손을 쳐다보기만 했다. 남자 턱끝에 맺힌 땀이 떨어지려고 했다. 남자는 적우의 입안으로 알갱이를 밀어 넣었다. 이에 손가락이 닿았다. 적우가 반사적으로 약을 삼켜 내렸다. 식도를 따라 쓴 기운이 남았다. 남자는 적우 가슴에 손바닥을 대고, 적우 귀에 입을 가까이 댔다. 떨리는 공기가 귀 안으로 들어왔다. 

- 기, 깊게 마셔. 더. 이제 뱉어. 들이쉬고, 어…, 내쉬고, 들이쉬고, 내쉬고. 

그의 주문에 따라 적우의 가슴이 움직였다. 잔잔한 말투, 흘리는 발음. 적우는 뿌연 시야로 남자의 얼굴을 뜯어봤다. 눈, 코, 입, 귀. 하나씩은 들어왔지만, 조합이 되지 않았다. 더운 바람이 불었다. 남자는 한강을 바라봤다. 적우도 그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물을 보자, 메스꺼웠다. 눈을 감았다. 더 울렁거렸다. 적우는 남자 쪽으로 어깨를 기댔다. 

심장이 점차 느려졌다. 고막을 울리던 진동이 잦아들었다. 과속 방지 도로의 고음이 거슬리게 들려왔다. 자전거 도로 뒤 넓은 아스팔트 도로가 보였다. 그 위에 조수석 창문이 내려간, 회색 세단이 세워져 있었다. 차들이 경적을 울리며 세단을 피해 갔다. 

- 감사합니다. 

적우가 말했다. 남자는 적우의 앞 머리카락을 위로 넘겼다. 젖은 얼굴을 손등으로 닦았다. 남자가 적우의 눈을 가만히 보다 말했다. 

- 죽지 마.

- 네?

- 어차피 거의 구조된대. 몸만 상하지. 돈도 나가고. 그러니까….

먼 곳에서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남자가 일어났다. 

- 얼른 가야 돼. 

남자가 회색 세단을 가리켰다. 천장에 [개인]이라 적힌 택시 표시등이 붙어 있었다. 

- 혹시 몰라서 경찰 불렀거든. 

적우는 망설였다. 남자가 손을 내밀며 조급하게 말했다. 

- 지금 안 가면 경찰서에 한참 붙들려 있어야 돼. 

적우는 손을 잡고 일어났다. 눈앞에 하얀 점이 맴돌았다. 그는 바지에 달라붙은 X 모양 테이프를 난간에 다시 붙였다. 그리고 비척거리며 택시로 다가갔다. 그는 뒷문 손잡이를 잡았다가, 손을 옮겨 조수석 문을 열었다. 의자가 앞으로 젖혀져 있었다. 적우 뒤로 다가온 남자가 의자 위치를 조절해 줬다. 사이렌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운전석에 앉은 남자가 시동을 걸었다. 적우는 안전벨트를 매다가 벗어둔 주방화를 발견했다. 문을 살짝 열고, 도로 닫았다. 창을 위로 올렸다. 택시가 출발했다. 

- 그런가요? 제가 괜히. 죄송합니다. 

남자는 자동차 스피커폰으로 통화했다. 목소리가 흔들렸고, 말할 때마다 침을 삼켰다. 차 내부는 시원하고 습도가 낮았다. 적우는 의자에 등을 기댔다. 남자가 적우를 흘끔거렸다. 적우는 목을 한 바퀴 돌리고, 눈을 세게 감았다 떴다. 분산됐던 초점이 하나로 모였다. 그는 택시 안을 둘러봤다. 컵홀더에 담긴 수첩과 생수병이 물건 전부였다. 

- 아니에요. 네, 네. 감사합니다. 

전화가 끊어졌다. 적우는 글로브 박스에 붙어있는, 코팅된 기사 프로필을 훑었다. 


성 명  :   서 강

생 년 월 일 : 1999년 01월 23일

자 격 증 번 호 : 23 - 서울 - 07015


적우가 중얼거렸다. 

- 생일이 같네. 

- 근데 한 살 더 어리지?

- 네. … 어떻게 아셨어요?

적우가 눈을 구부리며 남자의 옆얼굴을 흘겼다. 남자는 웃음을 참고 있었다. 적우는 남자의 이름을 제대로, 여러 번 읽었다. 그러곤 남자를 돌아보며 숨을 헉 마셨다.  

- 강아. 

강은 그제야 소리 내 웃었다. 


6. 맥도날드



[개인] 표시등 위로 [M] 구조물이 노랗게 빛났다.

적우와 강은 주차장 방지턱에 앉았다. 주차된 차가 두 사람을 가려줬다. 둘은 갈색 종이봉투에서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꺼냈다. 봉투 하나를 바닥에 눕히고, 냅킨을 깔고, 케첩을 짰다. 다른 봉투 위에는 감자튀김 두 팩을 쏟아부었다. 적우는 양말 차림의 왼발을 강의 운동화가 신겨진 오른발 위에 올렸다. 강은 오른발이 양말 바람이었고, 그 발로 바닥을 딛고 있었다. 적우가 회색 맥도날드 건물을 보며 말했다. 

- 십… 삼 년 만에 이렇게 먹어보네. 예전엔 자주 이랬었는데. 

- 맞아. 

- 너 이사 가고 나서는….

적우는 말을 아꼈다. 강이 조용히 햄버거 포장지를 열었다. 적우는 햄버거를 베어 물었다. 구운 양파 조각이 손에 묻었다. 적우는 손을 입으로 가져갔다가, 냅킨으로 닦았다. 그가 말했다. 

- 바로 못 알아봤어. 

적우는 남은 냅킨으로 얼굴을 닦고, 머리칼을 털어서 정리했다. 머리 위 가로등이 깜빡거렸다. 까맣게 모인 날벌레 떼가 보였다 사라졌다 했다. 적우가 물었다. 

- 고등학교는 잘 다녔어?

- 응. 그냥저냥. 

- 서울 애들은 좀 달라? 

- 조금? 비슷해. 

- 일하는 건 안 힘들어?

- 그냥, 뭐. 

- 이제 보니까 너 같다. 

적우는 입꼬리를 옆으로 벌린 채 강을 쳐다봤다. 강은 적우의 눈을 짧게 보고, 시선을 아래로 피했다. 입가가 희미하게 올라갔다. 적우가 말했다. 

- 내가 너무 귀찮게 하지. 먹어, 먹어. 

강이 반바지 아래 드러난 다리를 쓸었다. 무릎이 발갰고, 종아리에 긁힌 상처가 있었다. 강이 들릴 듯 말 듯 말했다. 

- 안 귀찮아. 

강의 말이 포장지 부스럭대는 소리에 묻혔다. 강이 햄버거를 조금 먹다 포장지를 여몄다. 적우가 놀라며 말했다. 

- 맛없어? 내 거랑 바꿀래? 좀 먹긴 했는데, 너 괜찮으면. 

- 네가 만든 거보다 맛없어. 

- 우리 햄버거 먹어봤어?

- 응. 몇 번. 

- 그런데도 내가 못 알아봤나 보네. 

- 들어가 보진 않았어. 

- 근데 어떻게 먹어봤어? 배달시켰어?

- 음, 뭐. 누가 가져다줬어. 

- 내가 만드는 건 어떻게 알았어?

- 밖에서 봤어. … 지나가다.

- 아까 밖에 서 있던 사람 너였어?

- 으응. 

- 왜 말 안 했어? 

- 그냥. … 근데 너 왜 긴팔 입고 있어? 안 더워?

- 아, 이거. … 피부 탈까 봐. 

- 일부러 뒤집어 입은 거야?

- 어, 그러네. 모, 몰랐다. 

적우는 콜라 컵을 쥐었다. 흥건히 맺힌 물방울이 손바닥을 적셨다. 물렁물렁해진 종이컵이 찌그러졌다. 뒤로 줄지어 선 나무에서 매미가 귀 따갑게 울었다. 가로등은 여전히 깜빡거렸다. 램프가 켜지면 빛이 역광으로 비춰, 강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꺼지면 어둡게나마 모습이 보였다. 강은 적우를 곁눈질하며, 엄지 아랫부분으로 관자놀이를 톡톡 쳤다. 적우가 물었다. 

- 왜 그래? 

- 여기가 자주 아파. 

- 편두통인가? 어떻게 아픈데? 

- 바늘로 뇌를 찌르는 느낌. 

- 어색해서 그런가 보다. 아까 봤을 땐 안 아팠어?

- 그래서 전에 약 하나 먹었어. 

강이 콜라를 마셨다. 공기 빠는 소리가 났다. 그는 컵을 내려놓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 왜 죽으려고 했어?

- 아니야. 

- 왜 죽고 싶었어?

- … 맛없어서. 

- 뭐가?

- 햄버거. 

- 맛있는데. 

틱하는 금속 소리와 함께 가로등이 완전히 꺼졌다. 개구리 소리가 드문드문 울렸다. 강이 입술을 모으고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그의 팔은 진하게 그을려 있었다. 왼팔이 오른팔보다 심했다. 적우는 해피밀 장난감 상자를 열었다. 큰 귀가 달린 거북이 피규어가 들어 있었다. 배에 작은 바퀴가 달려 있었다. 적우는 바닥에 바퀴를 대고 뒤로 당겼다. 손을 놓자 거북이가 달달거리며 택시 아래로 굴러갔다. 강이 불쑥 휴대폰을 적우에게 내밀었다. 화질이 낮은, 5:3 비율의 영상이 재생됐다. 


[1]

# 햄버거 인서트.

# 중학생 강 바스트 샷. 

[2]

# 뱀 사체 인서트.

# 중학생 강 바스트 샷. | [1] 동일 컷.

[3]

# 중학생 적우 바스트 샷. 

# 중학생 강 바스트 샷. | [1] 동일 컷. 


20초짜리 영상이 끝났다. 적우는 한 번 더 재생했다. 그가 영상에 눈을 고정한 채 말했다. 

- 와, 이걸 아직도 가지고 있어?

- 응. 가끔 봐. 이게 무슨 실험이라고 했지? 계속 기억이 안 나더라. 

- 쿨레쇼프 실험. 이름은 몰라도 돼. 그냥 앞뒤 장면에 따라 컷에 새로운 의미가 생긴다는 거야. 

- 신기했어. 같은 얼굴인데 햄버거 뒤에선 배고파 보이고, 뱀 뒤에서는 슬퍼 보였어. 지금도 신기해. 

- 그러니까. 잘 모르고 찍어도 나중에 끼워 맞춰진다니까. 해보니까 그렇더라. 

- 해봤어?

적우는 휴대폰 홀드 버튼을 누르고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답 없이 주위를 둘러봤다. 2층 창문으로 보이는 손님, 뒷문 앞에 쌓인 종이상자들, 드라이브 스루 카운터를 지나가는 자동차. 적우가 턱을 치켜들며 말했다. 

- 응. 나 영화 전공했어. 자퇴하긴 했는데.

- 우와, 정말? 진짜 갔구나. 대단하다. 

강이 큰 소리로 반응했다. 적우의 뒷말이 묻혔다. 강이 적우를 향해 상체를 기울였다. 

- 영화 계속 찍는 거야? 그래서 돈 모으는 거구나. 잠깐 알바 하면서. 

- 아니야. 이젠 그게 내 일이야. 

- 그렇게 좋아했는데 왜? 지금은 영화 안 좋아해?

- 햄버거도 좋아해. 

- 그럼 요리사인 거야? 요리사도 멋있어. 

- 그것도…. 너는? 배우 하고 싶다 했었잖아. 

- 모를 때 한 말이지. 난 대학도 안 갔어. 

두 사람은 동시에 택시를 봤다. 얼룩 없는 뒷유리에 나뭇잎이 하나 떨어졌다. 적우는 남은 감자튀김 여러 개를 케첩에 찍어, 입에 구겨 넣었다. 쓰레기를 모아 정리하고, 일어나 바지를 털었다. 강이 적우의 손목을 살짝 잡았다가, 바로 놨다. 강이 말했다. 

- 내 것도 먹어. 

- 아니야, 배불러. 고마워, 강아. 

- 아이스크림 먹을래?

- 그럴까? 내가 살게. 

매장 안 키오스크 앞에 남자가 서 있었다. 해진 체크 셔츠와 얼룩 많은 카고 바지를 입고 있었다. 볼이 꺼져 있었고, 입은 오므라들어 있었다. 그는 키오스크 화면을 신경질적으로 눌러댔다. 몇 분 후, 화면이 처음으로 돌아가자 남자가 탄식을 뱉었다. 적우가 그에게 다가갔다. 

- 도와드릴까요?

- 어어, 그래. 

- 뭐 드실 거예요? 

- 햄버거. 

- 어떤 햄버거요?

- 햄버거.

- 햄버거 이름 아세요?

- 아, 햄버거라고. 햄버거. 

적우는 갸웃하며 화면을 내렸다. 남자가 옆에서 적우의 행동을 감시했다. 화면 맨 아래에서 [햄버거]라는 메뉴가 보였다. 2,800원이었다. 적우는 햄버거 그림을 눌렀다. 남자가 말했다. 

- 소스랑 피클 다 빼 줘. 

- 그럼 작은 빵이랑 얇은 패티 하나만 나오는 건데, 괜찮으세요?

- 괜찮아. 

- 소스랑 피클 빼는 거 맞죠?

- 그렇다니까. 

- 세트 하세요, 단품 하세요?

- 제일 비싼 게 뭔데. 

- 네?

남자는 아랫니를 내밀고 적우를 위아래로 훑었다. 남자가 버럭 말했다. 

- 왜 이렇게 말귀를 못 알아들어. 무시해?

- 그게 아니라요. 

남자가 씩씩거렸다. 적우는 싱글거리며 손사래를 쳤다. 내려가는 입꼬리를 다시 올리려고 할 때, 냄새가 코안으로 들어왔다. 오이 비누, 그 아래 깔린 눅눅한 먼지 냄새. 퀴퀴한 피부 냄새. 적우의 입술이 비틀렸다. 고개를 숙이자, 남자의 때 탄 운동화와 자기의 지저분한 검정 양말이 같이 보였다. 적우의 얼굴이 남자보다 붉어졌다. 

이게 내….

남자의 낡은 옷, 휘적이는 가는 팔, 성마른 얼굴. 맥박이 빨라졌다. 주변시로 이쪽을 보는 손님들이 느껴졌다. 강이 적우 뒤로 붙었다. 강의 어깨가 등에 닿았다. 적우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남자를 마주했다. 그의 전신을 응시하며 버텼다. 조금씩, 심장이 잠잠해졌다. 목과 가슴을 폈다. 숨을 크게 마시고, 웃어 보였다. 

- 제대로 해드릴게요. 

적우는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받고, 남자를 봤다. 남자는 적우가 나갈 때까지 그를 노려봤다. 

적우는 택시 창문에 힘없는 얼굴을 기댔다. 건물, 자동차 전조등, 가로등 빛이 휙휙 지나갔다. 고개를 돌려 운전석에 앉은 강을 봤다. 강 위에 빛 잔상이 겹쳤다. 적우가 물었다. 

- 아까 그 약, 그냥 신경 안정제야?

- 응. 공황장애 약이야. 인프놀. 

신호등 앞에 차 두 대가 서 있었다. 강은 운전대를 틀어 차를 옆 차선으로 옮겼다. 운전석 창문 너머로 두 사람이 보였다. 한 사람은 목을 잡고 있었고, 한 사람은 손가락질을 하고 있었다. 다투는 소리가 차체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강은 엄지로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더니, 틴케이스에서 인프놀을 꺼내 생수와 함께 삼켰다.

- 그거 먹으면 어때? 신경통이나 공황 증상 억제 말고. 

- 그거 말고? 잘 모르겠는데. 

초록불로 바뀌었다. 싸우던 사람 중 한 명이 강의 차 앞으로 뛰어들었다. 강은 그가 비키길 기다리며 운전대를 두드렸다. 그러는 동안 빨간불로 바뀌었다. 다시 초록색으로 바뀌자, 강은 액셀을 밟았다. 다른 사람이 차 앞으로 뒷걸음질 쳐 왔다. 차가 덜컥 멈췄다. 강과 적우의 몸이 앞으로 쏠렸다. 강이 창문을 내리고 외쳤다. 

- 다쳐요. 

적우는 눈을 가늘게 뜨고 강과 바클리즈 틴케이스를 번갈아 봤다.

택시가 빌라 앞에서 멈췄다. 강이 틴케이스를 적우에게 건넸다. 

- 나는 집에 더 있어. 혹시 모르니까. 

- 고마워. 아, 택시비 줄게. 

- 뭔 소리야. 

강이 지갑을 꺼내려던 적우를 말렸다. 그러곤 입을 달싹이며 조수석 구석을 쳐다봤다. 적우는 그가 말하기를 기다렸다. 강이 입을 열더니,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그가 골목길을 보며 말했다. 

- 그 실험 있잖아. 클레… 어쩌고. 같은 장면이어도 뜻이 바뀔 수 있는 거야?

- 음, 그렇지. 햄버거 싫어하는 사람이면 싫어하는 얼굴로 보일 수도 있고, 뱀 키우는 사람이면 더 끔찍한 얼굴로 보일 수도 있지. 정해진 건 없어. 

- 그 영상 자주 봤어. 근데 마지막이 계속 다르게 보이더라. 

강은 운전대를 꼭 쥐었다. 손바닥이 마찰하면서 부드득거렸다. 강의 목소리가 작아서, 적우는 귀를 기울였다. 

-  이사 오고는 매일 봤어. 그땐 별생각 없었어. 그냥 네 얼굴 까먹을까 봐. 스물둘쯤에 오랜만에 봤는데, 싫었어. 내 얼굴도 싫어 보이고, 네 얼굴도 싫어 보였어. 스물다섯쯤엔 좋아 보였어. 기분이. 너랑 있을 때도 생각나고. 그러다 일 년 전에 다시 봤어. 

적우는 강을 물끄러미 봤다. 강은 영상보다 굵어져 있었다. 목도, 팔도, 허리도, 허벅지도. 퍼런 수염 자국이 입술 위아래로 번져 있었다. 피곤이 눈을 덮었다. 

- 보고 싶었어. 

징그럽다. 

- 나도.

적우는 강의 신발 한쪽을 벗고, 차 문을 닫고, 계단을 올라갔다. 

캠코더 영상을 틀었다. 급하게 가게를 나가는 장면을 잘랐고, 돌아와 레몬 소스 만드는 장면도 잘랐다. 자르고, 자르고, 자르고, 잘랐다. 그는 전체 클립을 통째로 [NG] 파일에 넣었다.

화장실에 들어간 그는 손가락을 목구멍에 넣었고, 종일 먹은 음식을 게워냈다. 


7. 스케이트보드



상영관은 한적했다. 열 명 남짓한 관객이 전부였다. 

보험사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관람 주의 사항을 말했다. 불이 꺼지고, 영사기가 빛을 쏘았다. 떠다니는 먼지가 드러났다. 스크린 위에 <파이트 클럽>이 덧입혀졌다. 


# 인물들이 주먹으로 서로를 때린다. 피가 튀긴다. 

# 성관계를 가진 후, 주인공이 여자를 모르는 척한다. 


적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 주인공 손에 수산화나트륨이 쏟아진다. 손등이 타들어 간다. 

# 주인공이 운전대에서 손을 뗀다. 차가 굴러떨어진다. 


적우는 고개를 돌리면서도, 스크린에 시선을 고정했다. 갈비뼈 부근을 어루만졌다. 


# 고층 건물들이 번쩍인다. 폭발한다. 무너진다. 


적우는 입 앞에 양손을 가져다 댔다. 폭발음 진동이 피부를 울렸다. 숨을 죽였다. 엔딩 크레딧을 중간까지 보다 일어났다. 

영화관 로비로 나와 도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았다. 캐러멜 팝콘 냄새가 풍겼다. 적우는 키오스크로 캐러멜 팝콘을 주문했다. 잠시 후 적우의 대기 번호가 모니터에 떴다. 매대 위에 캐러멜과 어니언이 반반 섞인 팝콘 통이 놓였다. 

- 저, 제가 시킨 거랑 다르게 나온 것 같아요. 

- 서비스입니다. 

직원이 말했다. 도연이었다. 그녀는 매표소를 혼자 지키고 있었다. 유니폼 대신, 얇은 티셔츠 위에 셔츠를 걸치고 있었다. 머리카락은 한 갈래로 묶여 있었다. 도연이 팝콘 통을 슥 밀자, 나무 향 핸드크림 냄새가 끼쳤다. 그녀는 적우의 옷차림을 살폈다. 적우가 말했다. 

- 여기서도 일하세요?

- 곧 끝나요. 

- 그래서 여기로 오라고 하셨구나. 

- 먼저 내려가 계세요. 

1층은 통째로 비어 있었다. [임대 문의]라 적힌 커다란 현수막이 사방으로 둘러쳐 있었다. 그 사이로 마네킹, 테이블, 싱크대가 보였다. 출입문 쪽에서 열기가 불어왔다. 적우는 컴컴한 곳으로 피했다. 공기가 스산했다. 그는 벌거벗은 마네킹 앞에서 멈췄다. 가슴이 나온 것도, 판판한 것도 있었다. 적우는 판판한 것의 얼굴을 봤다. 비어 있었다. 다음엔 봉긋한 것을 봤다. 손이 나무 가슴 위에 얹혔다. 얼굴을 가까이 들여다봤다. 눈동자가 없었다. 엘리베이터 소리가 들렸다. 적우는 소스라쳤고, 팝콘 몇 알이 바닥에 떨어졌다. 크로스백을 멘 도연이 손을 흔들었다. 

적우와 도연은 건물 앞 공터의 돌의자에 앉았다. 앞에 남자와 여자가 있었다. 남자는 상의를 벗고 있었고, 여자는 브라탑을 입고 있었다. 목과 어깨가 붉었다. 여자가 스케이트보드에 올라 일직선으로 죽 달렸다. 남자는 보드 위에서 30초도 버티지 못했다. 도르르 바퀴 구르는 소리와 타다닥 발 구르는 소리가 공터에 퍼졌다. 도연이 말했다. 

- 영화 뭐 봤어요?

- <파이트 클럽>이요. 

- 그거 막 치고받고 하는 거 아니에요? 

- 시간 떠서 본 거예요. 

도연이 공터를 둘러보며 가방을 뒤적거렸다. 적우가 말했다. 

- 어디 갈까요? 그 샐러드 먹으러 갈래요?

- 아뇨. 여기가 목적지. 

도연은 가방에서 분홍색 바클리즈 틴케이스를 꺼냈다. 적우는 그녀의 손을 지켜봤다. 틴케이스 안에 매끈한 흰색 알갱이가 잔뜩 들어있었다. 그녀는 사탕을 한 알 꺼내먹고, 적우에게도 한 알 줬다. 그녀는 혀로 사탕을 굴렸고, 그는 깨물어 먹었다. 도연이 말했다. 

- 하늘색 옷 안 입고 오셨네요. 적우 씨 얼굴엔 하늘색이 잘 어울리는데. 

- 마땅한 게 없어서요. 

- 괜찮아. 

도연이 가방에서 하늘색 셔츠를 꺼냈다. 적우는 얼떨떨한 얼굴로 옷을 받아 입었다. 도연이 해의 위치를 확인했다. 눈이 한껏 구겨졌다. 그녀는 일어나 먼발치로 걸어갔다. 크로스백 안에서 카메라가 나왔다. 도연은 오른쪽 눈을 뷰파인더에 가져다 대고, 왼쪽 눈을 감았다. 셔터 소리가 몇 번 들렸다. 적우는 팝콘 통을 안고 바닥을 살폈다. 도연이 말했다. 

- 얼굴 조금만 들어주세요. 등도 펴고. 

적우는 명령에 따르지 않았다. 도연이 미간을 만지작거리더니 그에게 다가왔다. 적우가 그녀의 허리께를 보며 말했다. 

- 뭐 하는 거예요. 

- 적우 씨 남기고 싶어서 그래요. 

- 저를 왜요?

- 언제 사라질지 모르니까. 

- 제가 왜…?

- 많이들 그러잖아요. 

적우는 스케이트보드 타는 남녀를 봤다. 여자가 남자 어깨를 잡고 자세를 알려주고 있었다. 도연이 적우의 옷깃을 정리했다. 손톱이 턱에 닿았다. 한 팔을 의자에 내려놓게 했다. 도연의 손바닥은 보송했다. 적우 팔에 있던 땀이 그녀 손에 묻어났다. 그녀는 그의 다리를 꼬게 하고, 발목 각도를 돌렸다. 도연은 있던 곳으로 돌아가 무릎을 꿇었다. 셔터가 눌렸다. 착. 착. 착. 적우의 발목이 원래대로 돌아갔다. 

햇볕이 내리쬐었다. 몸에 열기가 쌓였다. 행인들이 지나가며 두 사람을 흘긋댔다. 적우는 눈길을 이리저리 돌렸다. 스케이트보드 탄 남자가 도연 곁을 스쳐 갔다. 적우는 움찔했지만, 도연은 신경 쓰지 않았다. 셔터 소리가 이어졌다. 도연이 볼을 부풀리며 뷰파인더에서 눈을 뗐다. 적우가 말했다. 

- 그만 해요, 이제. 

도연이 적우 옆으로 와서 모니터를 살폈다. 그녀 얼굴엔 땀이 없었다. 적우는 이마를 훔치고, 화면을 봤다. 쭈뼛거리는 적우가 한 장씩 지나갔다. 

몸을 구부린 적우, 눈을 감은 적우, 팝콘을 흘리는 적우. 다음으로, 강이 나왔다. 적우는 사진 구석구석을 훑었다. 


(방은 작고, 침대는 크다. 새하얗고 두꺼운 베개와 이불. 강이 침대 위에 앉아 팔을 감싸고 있다. 헝클어진 머리, 달뜬 볼. 렌즈로부터 눈을 피한다. 등 뒤 커다란 창에서 빛이 쬔다. 왼쪽에서 오는 자홍색 빛이 강의 얼굴 측면을 덮는다.)


도연이 말했다. 

- 강이 잘 나왔죠.

- 어떻게 아세요?

- 남자 친구.

- 아아. 

적우는 사진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강의 입술이 미세하게 올라가 있었다. 적우의 입술은 조금 비틀렸다. 도연이 말했다. 

- 둘이 얼마 전에 만났다면서. 들었어. 

- 맞아요. 

- 강이는 좋아한대요. 

적우는 멈칫했다. 도연이 뭐라고 말했다. 스케이트보드 소리에 말이 묻혔다. 적우는 고개를 들었다. 도연이 다시 말했다. 

- <파이트 클럽>.

- 걔가요? 의외네. 

- 친구랑 같이 봤었다던데. 

- 아, 그랬지. 

적우는 영화관 건물을 올려보며 팝콘을 집어 먹었다. 도연도 통에 손을 넣었다. 종이 가림막이 두 손을 막았다. 적우는 그녀의 옆모습을 살폈다. 목에 그물 모양 홍조가 옅게 펼쳐져 있었다. 주위로는 두드러기가 나 있었다.

- 목 왜 그래요? 

- 햇빛 오래 쐬면 이러더라.  

- 불편하겠다. 간지러울 것 같은데, 안 힘들어요? 

도연은 적우를 바라보다, 코로 바람을 뿜으며 한쪽 입꼬리를 치켜올렸다. 

- 나한텐 그런 거 안 해도 돼. 

- 뭘요?

- 노력. 

적우는 헛기침을 하고, 혀로 볼 안쪽을 눌렀다. 도연이 말했다. 

- 말 편하게 할게. 나도 구팔이거든. 아, 근데 빠른이야. 

- 저도 일월 생이에요. 

- 너도 반말 해. 

- 강이는 누나라고 해요?

- 응. 

적우가 “허” 소리를 냈다. 그는 보더들의 실랑이 소리가 사라지길 기다렸다가 말했다. 

- 영화 좋아해?

- 별로. 

- 왜?

적우가 돌아보며 큰 소리로 물었다. 그러곤 다시 앞을 봤다. 

- 다 감독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잖아. 배우 애드립이라는 둥, 우연히 찍혔다는 둥. 뭐 자랑이라고. 

- 안 그런 감독도 있어. 

- 그런 사람이 있다면…. 

- 다들 힘들어하겠지. 

- 대단한 거지. 

둘은 눈을 마주했다. 도연이 이어서 말했다. 

- 사진은 그게 돼. 순간이니까. 아, 애니메이션도 가능하다. 

도연이 적우 쪽으로 몸을 돌렸다. 신발 끝이 가까워졌다. 

- <모브 사이코 100>이라는 애니가 있거든? 주인공이 엄청 센 초능력자인데, 누가 다칠까 봐 능력을 안 써. 

도연의 몸이 점점 적우에게 다가왔다. 향수 냄새가 진했다. 얇은 흰 티셔츠 안으로 검은 속옷이 비쳐, 회색으로 보였다. 적우는 신코 방향을 돌려 그녀의 신발과 맞댔다. 

- 걔는 감정에 서툰데, 감정이 폭발하면 초능력도 폭발해.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결국 다 받아들여. 그 어린애가 마지막에 웃는데…. 나 어릴 때 같아. 

도연 눈가에 물이 고였다. 콘택트렌즈가 홍채를 둘러싸고 있었다. 도연은 얼굴을 찡그렸다. 눈물 줄기가 흘렀다. 그녀는 적우가 자길 보는 걸 보고 나서야 눈물을 닦았다. 도연이 묶은 머리칼을 풀었다. 고개를 숙이고, 살짝 웃으며 적우를 올려봤다. 그녀를 지켜보던 적우가 픽 웃으며 말했다. 

- 너도 그런 거 하지 마. 

도연이 실실거렸다. 그녀는 곧게 폈던 허리를 편하게 구부렸다. 팔을 아래로 쭉 뻗으며 몸을 흔들거렸다. 그녀의 셔츠가 흘러내렸다. 그녀의 팔과 적우의 팔이 툭, 툭 닿았다. 머리칼이 피부를 간지럽혔다. 적우가 물었다. 

- 왜 이렇게 일을 많이 해?

- 사진 제대로 찍고 싶어서, 돈 주고 모델 섭외하려고. 내가 찍었던 거 보여줄까?

도연은 몸을 부드럽게 움직이며 크로스백을 뒤졌다. 작은 사진첩이 나왔다. 한 면에 한 장씩 들어가는 작은 앨범이었다. 

(가늘고 구불구불한 소나무의 숲. 흙바닥 위에 남자가 가부좌를 하고 앉아 있다. 펑퍼짐한 면바지와 셔츠 차림이다. 곱슬한 장발이 어깨까지 내려온다. 나뭇잎 사이로 녹색 빛이 내려와 얼굴에 직선으로 떨어진다. 렌즈 너머를 이글거리는 눈으로 본다.)


(직부감. 남자가 누워있다. 코를 경계로, 반절은 모래사장, 반절은 바닷물이다. 상의를 벗고 있다. 진하게 태닝한, 다부진 상체가 드러난다. 6mm 정도의 짧은 머리칼이 젖어 있다. 그림자가 없다. 렌즈 너머를 나른한 눈으로 본다.)


- 배경이 다 야외네. 

- 근포가 고향이라서. 

- 조명도 따로 친 거야?

- 당연하지. 하나 찍는데 세네 시간 걸렸어. 

- 빛이 좀 센 거 같은데. 

- 일부러. 티가 좀 나야 예쁘잖아. 

- 나름 원칙도 있어? 

적우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도연이 눈을 굴리더니 큰 소리로 웃었다. 적우는 모델들의 눈동자를 유심히 살폈다. 사진 속 남자들이 보고 있던, 도연이 말했다. 

- 우린 좀 비슷한 거 같아. 

큰 소리가 났다. 스케이트보드를 타던 여자가 넘어져 있었다. 보드가 도연의 발치로 빠르게 굴러왔다. 적우는 발을 뻗어 보드를 막았다. 팝콘 통이 튀면서 팝콘이 쏟아졌다. 남자가 적우에게 달려왔다. 얼굴과 복부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남자는 고개를 몇 번 꾸벅이고 보드를 집어 여자에게 달려갔다. 셔츠를 털자 노란 얼룩이 생겼다. 

- 미안. 빨아서 줄게. 

- 괜찮아. 강이 거야. 

도연은 팝콘 통 안에 있던 가림막을 뺐다. 적우가 통 안에 손을 넣었고, 도연도 넣었다. 손이 닿았다. 넘어진 여자가 일어나 몸을 살폈다. 땀 난 몸이 반질반질했다. 브라탑 일부가 젖어있었다. 

해가 얼마 남지 않았다. 도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적우도 몸을 일으키려 하자, 도연이 어깨를 눌러 앉혔다. 도연은 적우에게 셔츠를 벗게 했다. 적우를 가부좌 자세로 앉게 하고, 양팔을 의자에 기대게 했다. 가르마를 정리하고, 입가에 묻은 팝콘 가루를 닦았다. 적우는 이를 물고, 가만히 있었다. 도연이 셔츠를 벗어 허리에 묶으며, 걸어 나갔다. 

그녀는 카메라 다이얼을 돌리고, 뷰파인더에 눈을 댔다. 왼쪽 눈을 찡그렸다. 긴 머리칼이 렌즈 앞에서 살랑거렸다. 적우의 입술이 열렸다. 앞니가 보였다. 턱이 내려갔다. 눈꺼풀에 힘이 생겼다. 도연이 가까워지면 몸이 기울었고, 멀어지면 젖혀졌다. 셔터 소리가 빠르게 이어졌다. 도연이 모니터를 들여다보더니, 적우에게 뛰어왔다. 

- 건졌다. 

그녀는 혀를 내밀고 맑게 웃었다. 적우도 따라서 미소 지었다. 도연이 화면 속 적우의 얼굴을 확대하며 물었다. 

- 무슨 생각 했어?

- 예쁘다. 

사진을 계속 넘기자, 전에 찍은 것들이 나왔다. 적우의 손이 카메라 위로 올라갔다. 그는 쓰레기통 버튼을 눌렀다. 도연이 놀라서 물었다. 

- 뭐해. 

적우의 손이 빨라졌다. 사진이 하나씩 지워졌다. 도연이 적우의 손을 막았다. 

- 이건 잘 나온 건데. 

적우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순식간에 적우의 어색한 모습이 사라졌다. 도연이 말끝을 늘이며 발을 굴렀다. 

- 진짜 이해가 안 된다. 

적우는 고개를 저으며, 몇 장 남은 사진을 한 번 더 확인했다. 그는 그것마저 지우려고 했다. 도연이 카메라를 빼앗았다. 도연은 고개를 저으며, 카메라를 가방에 넣었다. 

둘은 횡단보도 앞까지 같이 걸었다. 팔이 가까워, 체온이 느껴졌다.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자, 도연이 적우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말했다. 

- 앞으로도 네가 날 안 좋아했으면 좋겠다. 

적우의 눈썹이 휘었다. 그는 도연의 손을 살짝 눌렀다. 

- 걱정하지 마. 

도연은 횡단보도를 건너고, 인도를 걷고,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적우는 그녀가 사라질 때까지 뒷모습을 바라봤다. 

8. 폐차



갈린 소고기가 볼 안에 가득했다. 

적우는 다짐육을 둥글게 굴려 저울에 올렸다. 98g이 나오면 덧붙였고, 103g이 나오면 덜어냈다. 트레이 위에 빨간 공이 늘어갔다. 지환이 다가와 적우 어깨에 턱을 올렸다. 

- 어우, 힘들다. 이러다 죽는 거 아니야? 

적우는 웃는 소리만 작게 냈다. 숨이 목에 닿았다. 지환은 적우의 구겨진 미간을 보지 못했다. 

- 일하고 들어가고, 또 일하고, 그래도 돈이 안 벌려. 전기세 나가지, 수도, 가스, 너네 월급까지. 넌 좋겠다. 그런 걱정 없이 살아서. 

- 그래도 전 얼른 가게 내고 싶은데요. 사장님처럼 멋있는 오너 되어야죠. 

적우는 그렇게 말하며,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 말은. 야, 내가 백 그람 딱 맞추지 말라고 했잖아. 구십오, 아니 구십이 정도로 해.  너 나 장사 망하게 하려고 일부러 이러지. 

턱의 압력이 강해졌다. 적우는 고기를 조금씩 떼어냈다. 

- 아니에요. 깜빡했어요. 

지환이 주머니에서 궐련형 전자 담배를 꺼내며 뒷문을 열었다. 그가 나가자, 적우는 뗐던 고기를 다시 붙였다. 

그는 앞문을 수시로 봤다. 공 모양이 점점 비뚤어졌다. 10시 정각이 되었다. 느려지던 적우의 손동작이 아예 멈췄다. 시계 초침이 돌아갔다. 6분 후, 종소리와 함께 도연이 들어왔다. 

- 늦어서 죄송합니다. 

도연이 헤실거리며 주방으로 들어왔다. 적우는 조용히 고기를 만졌다. 그러다 눈을 들고, 그녀의 시선을 기다렸다. 눈이 마주쳤다. 간질거렸다. 적우는 얼마 남지 않은 다짐육을 빠르게 뭉쳤다. 저울이 95g, 90g을 가리켰다. 상관하지 않았다. 

도연은 냉장고에서 피클을 꺼냈다. 적우는 트레이 위에 비닐을 씌우고, 냉장고 옆 싱크대로 갔다. 물줄기를 약하게 틀고 손을 씻었다. 그가 말을 붙였다. 

- 이따 나가서 밥 먹을래?

- 아, 미안. 나 약속이 있어서. 

- 그래?

- 다음에.

- 네. 다음에. 

브레이크 타임이 되자, 도연은 바로 가게를 나갔다. 적우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지 않았다. 지환이 냉장고에서 김치통과 햄 통조림을 꺼냈다. 조리대에 음식들을 올려놓고, 적우의 목덜미를 주물렀다. 차가운 손바닥이 끈적하게 달라붙었다. 지환이 말했다. 

- 밥 두 개 할까, 세 개 할까. 

- 오늘 할 게 있어서 나갔다 올게요. 죄송해요. 

- 그래라. 두 개 해 먹어야겠다. 

적우는 카페에서 턱을 괴고 앉아, 뜨거운 커피를 홀짝였다. 매장 안엔 사람들이 그득했다. 다양한 높낮이의 목소리, 커피 머신 소음이 뭉쳤다. 적우는 눈을 끔뻑이다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바클리즈 틴케이스가 딸려 나왔다. 카카오톡을 켰다. 오늘 온 연락이 화면을 꽉 채웠는데, 빨간 숫자는 없었다. 그는 [서강]을 누르고, 강이 보내준 쿨레쇼프 영상을 몇 번 봤다.

검색창에 [인프놀]을 검색했다. [프로프라놀롤]이 연관 검색어에 떴다. 그는 RISS에 들어가 [프로프라놀롤]을 쳤다. [고소공포증과 연관된 프로프라놀롤 복용과 대처 방식], [대인 기피증의 프로프라놀롤을 이용한 치료] 논문을 결제했다. 

적우는 틴케이스를 손 안에서 덜그럭거리며, 서론을 찬찬히 읽었다. 


[프로프라놀롤은 심근 수축력과 심장 박동수를 감소시킨다. 떨림, 편두통 등의 예방으로도 사용된다.]

[경험이 감정이 되는 데에는 아드레날린이 영향을 미친다. 프로프라놀롤은 아드레날린 흡수를 방해해 기억의 공포감을 줄여준다.]


그의 눈이 빠르게 움직였다. 본론을 읽었다. 


[1) 약물을 복용하게 한다. 2) 공포 대상을 생각하게 한다. 3) 실제 상황에 들어간다.)]

[실험자 A의 문항 점수 평균은 총 13점 감소했고, B는 17점 감소했음을 볼 수 있다. 대상 군의 점수 하락은 유의미한…]


뻐근한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결론을 읽었다. 


[정확한 인과관계는 밝힐 수 없었다.]

[하지만 부작용도 있으니 약물에 의존하기보다는 건강한 방법을 …]


화면 위로 시간이 보였다. 브레이크 타임이 몇 분 지나 있었다. 그는 식은 커피가 담긴 컵을 반납대에 놓고, 밖으로 달려 나갔다. 

- 늦어서 죄송합….

도연이 철판 앞에 서 있었다. 한 손엔 프레스를, 다른 손엔 뒤집개를 잡고. 적우는 철판 아래 선반에 손을 넣었다. 도연이 반걸음 비켜났다. 적우가 선반을 휘저으며 몸을 옆으로 움직였다. 도연은 상체를 굽혔지만, 발은 옮기지 않았다. 적우는 휴대폰 플래시를 켜서 선반 안을 봤다. 주방화가 없었다. 그가 일어났다. 도연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 

- 저 잘하죠. 

- 네. 그러네요. 이제 제가 할게요. 고마워요. 

적우는 양손을 내밀었다. 도연이 기구를 품 안으로 당겼다. 적우가 지환을 쳐다봤다. 그는 재료가 쌓인 접시 옆에서 휴대폰만 보고 있었다. 도연이 말했다. 

- 별로 안 어렵네요. 시간 맞춰서 뒤집기만 하면….

타이머가 울렸다. 도연이 패티 아래로 뒤집개를 밀어 넣고 들어 올렸다. 패티가 눌어붙어, 부서졌다. 도연이 당황했다. 적우는 뒤집개를 낚아채고 패티를 눌러 모양을 잡았다. 그리고 준비된 재료 위에 패티를 올렸다. 도연이 손을 내밀었다. 

- 더 해볼래. 

- 내가 할게. 

- 잘하는데 왜. 도와준다잖아. 좀 쉬어. 

지환이 휴대폰을 보며 말했다. 화면 안에선, 긴 칼을 든 캐릭터가 다른 캐릭터를 베고 있었다. 

- 저기요. 

홀에서 손님이 불렀다. 도연이 적우를 밀어냈다. 적우는 버티다가 철판 구석으로 밀려났다. 그녀가 그의 손에 들린 뒤집개를 잡았다. 적우 손아귀에서 힘이 빠졌다. 그녀는 팔을 요란하게 움직이며 패티를 철판에 올렸다. 타이머를 기다리며 철판을 탁탁 두드렸다. 입으로는 투투 소리를 냈다. 탁탁. 투투. 탁탁. 투투. 적우는 코로 숨을 뱉고 홀로 나갔다. 

그는 문 닫을 시간이 될 때까지 그녀를 제대로 보지 않았다. 

마지막 접시를 씻어 찬장에 올렸다. 물줄기가 티셔츠 옆구리 선을 따라 흘렀다. 등 뒤로 향수 냄새가 들어왔다. 적우는 접시를 내려 다시 닦기 시작했다. 뽀득뽀득. 뒤에서 쿵 소리와 함께 도연의 비명이 들렸다. 돌아보니 도연이 넘어져 있었다. 펌프스 밑창이 반들거렸고, 바닥엔 노란 기름이 고여 있었다. 도연은 까진 손바닥을 들여다봤다. 적우는 손에 묻은 물기를 털었다. 도연이 장난스럽게 울상을 지으며 적우에게 손을 내밀었다. 적우가 그녀를 내려보며 말했다. 

- 그러게 왜 그런 걸 신고 다녀. 일하는데. 

적우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도연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적우의 눈이 뒤늦게 커졌고, 그 상태로 멈췄다. 홍채에 형광등 빛이 반사되었다. 앞이 뿌예졌다. 도연이 말했다. 

- 너 왜 그래?

가게 유리 벽 뒤로 누군가 얼쩡거렸다. 적우가 고개를 돌리자, 그가 손을 흔들었다. 적우는 허겁지겁 도연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도연은 적우를 빤히 보다 손을 잡고 일어났다. 적우는 서랍에서 연고와 밴드를 찾아 그녀에게 건넸다. 그리고 캠코더를 챙기고, 인사도 하지 않고, 뒷문으로 나갔다. 

적우는 버스에 앉아 차체에 얼굴을 기댔다. 캠코더로 마지막 장면을 돌려보다 모니터를 닫았다. 엔진 진동이 몸에 울렸다. 가만히 있어도 버스는 나아갔다. 그러다 창밖 모습이 익숙해졌다. 자이 아파트 꼭대기가 보였다. 버스가 멈췄다.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적우는 이 사이로 혀를 물었다. 세게, 더 세게. 창문 위에 달린 빨간색 비상용 망치가 눈에 박혔다. 그 모양새를 한참 뜯어봤다. 주위 승객들은 꾸벅꾸벅 졸거나, 휴대폰 화면에 얼굴을 대고 있었다. 적우는 팔을 뻗어 손끝으로 망치를 만졌다. 에어컨 바람을 맞고 있어 차가웠다. 버스가 정류장 앞에서 급하게 정지했다. 적우의 손이 움켜지면서, 망치가 받침대에서 빠졌다. 적우는 망치를 옷 속에 넣어, 겨드랑이에 끼웠다. 그리고 뒷문이 닫히기 직전, 버스에서 내렸다. 

버스가 간 방향 반대로 도망갔다. 한참을 걸었다. 풍경이 낯설어졌다. 휴대폰 배터리는 3퍼센트였다. 카카오톡을 열어서 새로 온 연락 전부에 답장했다. 1퍼센트가 되었다. 그는 강과의 채팅방에 들어갔다가, 홀드 버튼을 눌렀다. 겨드랑이에 힘을 줘서 망치를 붙잡았다. 

골목이 보일 때마다 안으로 파고 들어갔다. 상가와 공동 주택이 줄었다. 단독 주택만 가끔 보였다. 주택 대문 앞을 지나가는데, 돌연 안에서 개가 짖었다. 먼 곳에 있는 개도 따라 짖었다. 세 마리, 네 마리로 늘었다.

그는 공터 앞에서 발을 멈췄다. 쇠사슬 한 줄이 입구를 막고 있었다. 그 옆에 세워진 가로등 하나가 공터를 옅게 비췄다. 어둠 안에서 파란색 자동차 보닛이 반짝였다. 너덜너덜해진 범퍼가 바닥에 닿아 있었다. 망치를 품에서 꺼냈다. 체온으로 데워져 따뜻했다. 뒷주머니에 넣고, 쇠사슬을 넘어 안으로 들어갔다. 사방에 파손된 자동차가 있었다. 차체 반절이 찌그러진 것도, 위아래가 뒤집힌 것도 있었다. 적우는 입구 앞 컨테이너로 다가갔다. 그리고 작게 말했다. 

- 저기요. 

대답이 없었다. 적우는 크게 외쳤다. 

- 저기요!

개가 짖었다. 적우는 지저분한 창문 안을 들여다봤다. 정수기와 냉장고가 흐릿하게 보였다. 귀를 대봤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전자음도 없었다. 그는 처음에 발견한 파란색 차를 향해 갔다. 

범퍼를 제외한 곳은 멀쩡했다. 네 개의 창문이 온전했다. 뒷주머니에서 망치를 꺼냈다. 손바닥에 땀이 비질비질 났다. 망치가 미끄러지다 머리 부분에서 걸렸다. 뾰족한 망치 끝으로 조수석 유리창을 톡톡 두드려봤다. 팔을 위로 들었다. 팔이 툭 떨어졌다. 자동차 주위를 잰걸음으로 서성였다. 앞주머니에서 틴케이스를 꺼냈다. 뚜껑을 열고, 알약 하나를 입에 넣었다.  

발걸음이 서서히 느려졌다. 그는 가만히 서서, 유리창을 바라봤다. 그게 앞을 막고 있었다. 어금니를 딱 붙였다. 팔을 들어 올려 뒤로 뺀 후에, 조수석 유리창을 향해 휘둘렀다. 둔탁한 소리가 났다. 중심점부터 거미줄 모양으로 금이 갔다. 한 번 더 내리쳤다. 창이 흐물흐물해졌다. 한 번 더 내리쳤다. 사각형 모양을 유지하며 차체 안으로 떨어졌다. 적우는 반대편으로 돌아가 운전석 앞에 섰다. 손을 올리고 휘두르려는데, 힘이 풀렸다. 망치의 꼭짓점이 창 가장자리에 맞았다.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유리창이 박살 났다. 작은 유리 조각이 되어 무너졌다. 잔진동이 손안을 울렸다. 그는 남은 두 개의 창도 부쉈다. 

텅 빈 자동차 안을 들여다봤다. 허공에서 무언가 빛났다. 적우는 팔을 넣어 그것을 잡았다. 주먹 쥔 팔을 뒤로 빼는데, 창틀에 남은 유리 조각에 팔이 죽 긁혔다. 자갈 위로 피가 뚝뚝 떨어졌다. 아프지 않았다. 적우는 손을 펼쳤다. 금속 비즈로 만든 줄이었다. 녹이 슬어 있었고, 끈적한 먼지로 덮여 있었다. 그 아래로 붉은 한자가 적힌 노란 부적이 달려 있었다. 종이를 구겨 멀리 던졌다. 작게 톡 소리가 났다. 그는 주위를 살폈다. 덩그러니 혼자였다. 

휴대폰을 꺼냈다. 적우는 카카오톡에 들어가 강의 프로필을 눌렀다. 그리고 현재 위치를 전송했다. 그러자마자 휴대폰이 꺼졌다. 

파란 자동차 옆에서 30분쯤 앉아 있었다. 타이어가 자갈을 밟는 소리가 났다. 공터 입구에 택시 반절이 나타났다. 운전석 창문이 내려갔다. 검은 형체가 강의 목소리를 냈다. 

- 타, 적우야!

적우는 자리에서 일어나다 멈칫했다. 티셔츠에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겉은 말라붙었지만, 속은 아직 미끈거렸다. 적우가 다가오지 않자, 강이 차에서 내렸다. 강이 가로등 아래를 지나자, 그의 형체가 드러났다. 상처 난 곳이 아파 왔다. 적우는 왼손으로 오른팔을 붙잡았다. 강이 적우에게 달려왔다. 피를 보고 우왕좌왕하던 강은 윗옷을 벗었다. 티셔츠를 길게 접어 적우의 팔에 단단히 묶었다. 강의 목과 쇄골에 맺힌 조그마한 멍 자국들이 보였다. 적우는 아랫입술을 내밀었다. 

강이 적우의 손목을 잡고 끌었다. 적우는 움직이지 않았다. 강이 적우 허리에 손을 두르고 끌어당겼다. 적우가 신음하며 몸을 움츠렸다. 그리고 허리께를 문질렀다. 강이 말했다.

- 그렇게 세게 안 잡았는데. 거기도 다쳤어?

막을 새도 없이 강이 적우의 윗옷을 들쳤다. 그는 멍이 가득한 적우의 허리를 보고 굳었다. 강은 옷을 더 올렸다. 적우의 몸을 훑었다. 적우는 그의 시선을 받다가, 옷을 내렸다. 그리고 앞장서 걸었다. 

가로등 아래를 지나갔다. 강의 상체가 드러났다. 적우는 걸음을 멈췄다. 강이 그를 지나쳐갔다. 적우는 그의 팔을 잡아 몸을 돌려세웠다. 강의 가슴엔 크고 시퍼런 멍이 있었다. 옆구리에도 노란 멍이 있었다. 강은 몸을 가리려 손을 올렸다가, 내렸다. 적우는 천천히, 그의 뒤로 걸어갔다. 등에도 붉은 멍이 있었다. 주위로 긁힌 상처가 몇 줄 있었다. 적우가 물었다. 

- 누가 이랬어. 

- 너는?

적우가 눈을 옆으로 돌리며 말했다. 

- 내가. 

강은 눈을 깜빡이다, 소리 없이 “아.”라고 말했다. 적우가 다시 물었다. 

- 누가 그랬어. 

- … 여자 친구. 

- 도연 씨?

강의 눈이 커졌다. 적우의 눈은 가늘어졌다. 강이 고개를 숙이고 손톱을 만졌다. 적우는 강의 손목을 잡고 공터 안으로 이끌었다. 그는 바닥에 떨어진 망치를 주워 강에게 건넸다. 그리고 유리창이 멀쩡한 노란색 차를 향해 손짓했다. 

- 너도 때려. 

강이 망치를 꼭 쥐고 차를 향해 걸어갔다. 팔을 절반만 들고 주춤거렸다. 그는 망치 손잡이로 관자놀이를 눌렀다. 적우가 주머니에서 틴케이스를 꺼냈다. 더러운 손을 바지에 닦고, 인프놀을 꺼내 강의 입에 들이밀었다. 강은 약을 받아먹었다. 

유리 깨지는 소리가 연이어 났다. 킬킬대는 소리도 함께. 개 짖는 소리가 아득하게 퍼졌다.

 

9. 굴



- 고소 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높은 곳에 올라갈 수 있고, 대인 기피증이 있는 사람은 백화점에 갈 수 있는 거지. 

강은 운전석에 앉아서 적우의 말을 들었다. 실내등이 그의 얼룩덜룩한 몸과 홍조 띤 얼굴을 연하게 비췄다. 강이 말했다. 

- 뭔가 달라진다고는 느꼈는데, 제대로 고민은 안 해봤어. 그런 효과가 있었구나. 

- 근데 임상이 많이 없더라고. 학계에서 관심도 별로 없고. 확실한 건 아니야. 

적우는 손가락 마디를 깨물었다. 강이 말했다. 

- 그럼 싫어하는 음식도 먹을 수 있을까?

- 그렇지 않을까? 알러지가 없다면, 마음의 문제니까. 

택시가 적우의 집과 가까워졌다. 자이 아파트가 점점 커졌다. 적우는 문 잠금장치를 쓰다듬었다. 그러더니 지갑을 꺼냈다. 

- 오늘은 택시비 줄게. 

- 됐다니까. 

- 아니면 옷값이라도.

강은 딴소리를 했다. 말이 빨랐다. 

- 우리 노로바이러스 걸렸을 때 기억나? 나 그 후로 굴 못 먹는데. 

- 나도. 

차가 느려졌다. 신호등이 노란색에 머물다, 빨간색으로 바뀌었다. 택시가 멈췄다. 강이 목을 긁었다. 손끝이 자잘한 멍 자국을 지나갔다. 팔엔 차체에 긁힌 선이 그어져 있었다. 피가 날 정도의 상처는 아니었다. 적우가 말했다. 

- 먹어 볼래?

- 응. 

초록불이 되었다. 강은 차 방향을 돌렸다. 

적우는 부스스 눈을 떴다. 캄캄해서 보이는 게 없었다. 동공이 커졌다. 조심히 손을 옆으로 뻗었다. 피부와 그 아래 뼈가 만져졌다. 강이 작게 “큼” 소리를 냈다. 적우는 손을 뗐다. 어둠에 익숙해지자, 팔짱을 낀 채 잠든 강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입술을 씹고 있었다. 적우는 부스럭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강이 눈을 떴다. 적우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 잠들었네. 미안. 

- 아니야. 더 잘래?

적우는 고개를 저으며 창밖을 봤다. 수많은 빛 망울이 검은 바닥 위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차 문을 열자 짠 냄새와 물 냄새가 풍겨왔다. 적우는 빛나는 바닥을 향해 걸어갔다. 몇 대의 고기잡이배와 보트가 둥실거렸다. 바다와 지면은 낮은 시멘트 턱으로만 나뉘어 있었다. 적우의 발바닥 반절이 공중에 떴다. 적우는 놀라 뒤로 걸었다. 반대편엔 수산시장이 있었다. 두세 군데에만 불이 켜져 있었다. 가게 천막에 붙은 전구 빛이 바닥에 고인 물웅덩이에 닿았다. 모자이크 모양으로 빛이 번졌다. 마른 곳엔 그림자가 길게 드리웠다. 강이 나오지 않자, 적우는 운전석 문을 열었다. 

- 왜 안 나와?

강이 벗은 몸을 가리키며 적우를 올려봤다. 

적우는 민소매 티셔츠와 물티슈를 두 개씩 사 왔다. 검은 민소매 티와 물티슈 하나를 강에게 주고, 조수석 쪽으로 돌아갔다. 팔에 묶인 강의 티셔츠를 풀었다. 피가 멎어 있었다. 상처 부근을 물티슈로 살살 닦았다. 흰색 섬유가 붉게 번졌다. 피부가 조금 벌어져 있었다. 뻣뻣해진 윗옷을 벗고, 피가 묻은 몸을 닦았다. 그리고 흰색 민소매 티셔츠를 입었다. 반대로 돌아가니, 강은 아직 몸을 살펴보고 있었다. 적우가 열린 차 문을 밀어 강을 가렸다. 

- 다 닦였어?

강이 차에서 나오며 물었다. 적우는 고개를 돌렸다. 강이 양팔을 옆으로 들고 한 바퀴 돌았다. 허리춤에 마른 핏자국이 있었다. 적우는 물티슈를 뽑아 그곳을 문질렀다. 강이 간지러워했다. 그가 말했다. 

- 어떻게 여기까지 묻었지?

- 얼른 옷 입어. 

두 사람은 횟집 미닫이문을 열었다. 카운터 앞에 앉은 여자는 휴대폰으로 뉴스를 보고 있었다. 그녀는 둘의 모습을 한참 쳐다봤다. 적우와 강이 팔을 가렸다. 여자가 말했다. 

- 싸웠어?

두 테이블에 손님이 있었다. 한 테이블엔 남녀 두 명이 마주보고 앉아 있었는데, 모두 고성을 질렀다. 상대가 말할 때는 다른 곳을 보다가, 자신이 말할 때만 상대를 봤다. 서로의 말을 수시로 막았다. 다른 테이블엔 여자 두 명이 나란히 붙어 앉아 있었다. 술을 홀짝이다가, 말할 때면 상대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리고 입을 가리고 웃었다. 적우는 강의 옆자리 의자를 짚었다가, 맞은 편에 가서 앉았다. 

대접에 석화가 담겨 나왔다. 껍데기에 불규칙한 곡선이 층층이 그려져 있었다. 그 안엔 매끈하고 흰 속살이 있었는데, 가장자리가 검은 띠로 둘러싸여 있었다. 적우는 젓가락을 들어 살을 찔러봤다. 순간 구역질이 올라왔다. 헛기침을 하며 앞을 보니, 강은 눈을 돌리고 있었다. 강이 손을 들었다. 

- 소주 한 병 주세요. 

강은 굴을 보지 않으려고 하면서, 반찬으로 나온 번데기를 한 숟갈 퍼먹었다. 적우가 물었다. 

- 집에 어떻게 가려고.

- 그냥은 도저히 못 먹겠어. 

잔 두 개에 소주가 담겼다. 적우는 주머니에서 바클리즈 틴케이스를 꺼냈다. 알약이 두 개 남아 있었다. 적우는 하나를 혀에 얹고, 한 알은 강에게 줬다. 둘은 잔을 부딪쳤다. 맑은소리가 났다. 소주와 함께 약을 삼켜 내렸다. 소주 맛이 약 맛을 덮었다. 적우가 눈을 감았다. 강이 따라서 눈을 감으며 물었다. 

- 어떻게 하는 거야?

- 아팠던 때를 떠올려 보자. 

- 겨울방학 때였어. 너네 집 마당에서 놀았던 것 같은데. 눈사람 만들고, 포대로 썰매 타고 그랬잖아. 

- 맞아, 겨울. 집은 아니고 주변 산이었어. 

- 생각난다. 너 털모자 썼던 거. 손이랑 귀랑 다 빨개선. 근데 그 나이 땐 별로 안 추웠던 것 같아. 그렇지 않아?

- 응. 놀다가 집 가서 씻고 나오니까, 굴을 주셨었지. 

- 맛있었어. 이상하게 너네 집 가서 먹으면 라면도 맛있더라. 김치 때문인가? 

- 강아, 집중해야지. 

- 으응. 음, 밤에 같이 자는데 배가 너무 아파서 깼어. 속이 막 부글부글하고, 장이 꼬이는 느낌. 

- 전기장판이 뜨거웠는데도 추워서 몸이 떨렸어. 오한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그때 처음 알았어. 

- 다음날 학교도 못 갔잖아. 하루 종일 아픈 거 잊으려고 영화 연속으로 보고. 

- 맞아. 그때 많이 봤지. 

- 내용이 뭐더라. 신부님이 부활하고, 사진 보면서 과거로 돌아갔다가, 마지막에 기차 앞에서 소리 질렀던 것 같은데. 

- 섞였어. 세 개 다 다른 영화야. 

적우가 웃으면서 눈을 떴다. 강은 먼저 눈을 뜨고 적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선을 내리자, 굴이 선명하게 들어왔다. 둘은 젓가락을 들었지만 선뜻 움직이진 못했다. 적우가 숨을 깊이 들이쉬고 굴을 집었다. 살이 껍데기에서 떨어졌다. 

굴을 꾸준히 응시했다. 뒤틀렸던 턱이 바르게 돌아왔다. 굴을 입안에 넣었다. 서너 번만 씹고서 삼켰다. 꿀꺽 소리가 크게 났다. 미끈거리는 덩어리가 목구멍 안으로 고통스럽게 내려갔다. 차가운 감각이 식도에서 위까지 내려갔다. 적우는 소주를 비우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강이 입을 앙다물었다. 그의 젓가락도 굴을 향했다. 껍데기에 붙은 살이 떨어지지 않았다. 적우가 껍데기를 잡아주며 말했다. 

- 너무 옛날 일이야. 그치?

강은 초장을 듬뿍 찍고, 새빨간 덩어리를 입안에 넣었다. 그는 몇 차례 헛구역질하더니, 삼켜냈다. 그리고 소주를 마셨고, 입맛을 다셨다. 

두 사람은 석화 대접을 모조리 비우고, 산낙지 탕탕이도 시켜 먹었다. 소주병이 늘어갔다. 어느새 손님은 그들밖에 없었다. 적우가 버둥거리는 낙지 일부를 보며 말했다. 

- 잔인하지 않아?

- 맛있어, 먹어 봐. 

적우는 낙지 다리를 입에 넣고 씹지 않았다. 꿈틀대며 입안을 헤집었다. 적우가 다리를 접시에 뱉으며 말했다. 

- 얘네 통각 있대. 

강이 젓가락을 내려놨다. 그들이 가게를 나오자, 가게 불이 꺼졌다. 

시멘트 난간을 따라 걸었다. 가로등 주변은 언뜻 보였지만, 조금만 멀어지면 칠흑이었다. 팔자로 걷던 적우가 휘청이자, 강이 적우의 팔을 잡았다. 축축한 손바닥이 팔뚝을 감쌌다. 적우는 강을 봤다. 그는 숨이 조금 거칠었지만, 눈빛은 멀쩡했다. 강이 적우의 볼에 손바닥을 댔다. 적우는 그의 손을 밀어내고 난간으로 다가갔다. 강이 놀라서 따라왔다. 작은 보트들을 가리키며, 적우가 말했다. 

- 탈래?

적우는 대답을 듣기 전에 보트 안으로 풀쩍 뛰어들었다. 보트가  흔들렸다. 적우는 팔을 벌려 가까스로 중심을 잡았다. 강은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좌우를 바쁘게 살폈다. 인기척은 없었다. 보트는 굵직한 밧줄로 말뚝에 매여있었다. 매듭이 복잡해 풀 수 없었다. 적우는 다리를 벌려 옆 보트로 넘어갔다. 고인 물에 발이 미끄러져 몸이 고꾸라졌다. 얼굴이 바다를 향해 처박혔다. 코끝이 물에 닿았다. 물결에 얼굴이 비쳐 아른거렸다. 적우는 몸을 들었다. 이번 보트는 밧줄이 헐거웠다. 선체 여기저기가 파손되어 있었고, 왼쪽 노의 손잡이는 부러져 있었다. 적우가 강을 보고 외쳤다. 

- 타!

강은 좌우를 한 번 더 살피고 한 발짝, 한 발짝, 보트 안으로 들어왔다. 보트가 가라앉았다 떠올랐다. 적우는 왼쪽에, 강은 오른쪽에 앉아 노를 잡았다. 

노가 물을 가르는 소리, 가쁜 호흡 소리, 끼익거리는 보트 소리가 나지막이 퍼졌다. 둘은 한동안 엇박자로 노를 저었다. 흘러내린 땀이 입술 끝에 맺혔다. 적우는 노를 더 바투 잡았다. 둘의 박자가 점점 맞춰졌다. 속도가 났다. 바람이 머리칼을 흔들고, 땀을 식혔다. 작은 파도가 뾰족뾰족하게 솟으면, 선체는 파도를 밟았다. 

노질을 멈췄다. 적우와 강은 온전히 물 위에 떠 있었다. 수산시장이 손가락 한 마디보다 작게 보였다. 민소매 티셔츠가 젖었다. 바지도, 속옷도 젖었다. 적우는 오른팔을 물에 쑥 담갔다. 시원했다. 팔꿈치까지 깊숙이 넣었다. 검은 그림자가 수면 아래로 쉭 지나갔다. 그는 화들짝 놀라며 팔을 뺐다. 상처가 따끔거렸다. 적우는 강을 돌아봤다. 바닷물 묻은 손가락을 혀에 대보고 있었다. 강이 적우의 시선을 발견했다. 적우가 물었다. 

- 재밌어?

- 응, 좋아. 너는?

- 나도. 

- 말로 해 줘. 

- 의미 있어. 

강은 미소를 지으며 하늘을 올려봤다. 적우도 그랬다. 끝없는 검은 화면에 작은 점들이 박혀 있었다. 강이 말했다. 

- 별 많은 거 오랜만에 본다. 

- 그래봤자 유답보단 아니지. 

적우는 강의 얼굴로 시선을 내렸다. 커진 눈, 올라간 입술, 오르내리는 가슴, 짧게 뱉는 숨. 적우가 말했다. 

- 우리 이런 거 더 하자. 

- 어떤 거?

- 이겨내는 거지. 굴 같은 걸. 

- 으음. 예를 들어?

- 내가 무서워하는 건… 햄버거. 그리고…… 연애. 너는?

강은 고민하며 바닥을 봤다. 그의 입이 벌어졌다. 바닥에 물이 고여 있었다. 작은 구멍으로 물이 들어오고 있었다. 

- 적우야, 어떡해. 

- 아직 괜찮아. 어서 말해, 강아. 

- 돌아가자. 

- 우선 말해. 

- 나는, 난… 택시 하기 싫어. 시끄러운 것도, 무시당하는 것도 싫어. 

- 그럼, 뭐 하고 싶어?

강이 속삭였다. 

- 연기. 

- 응? 뭐라고?

- 연기 해보고 싶어. 제대로. 

강이 조금 더 크게 말했다. 적우는 눈을 구부리며 웃었다. 그가 강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끈적한 몸이 맞닿았다. 손끝에 거칠거칠한 생채기가 만져졌다. 적우는 그의 상처를 쓸며 말했다. 

- 우선, 걔랑 헤어져야지. 

- 으응. 그래야지. 

둘은 잠시 붙어있었다. 그러다 강이 불쑥 몸을 옮겨 노를 잡았다.

- 빨리 가자. 빠지겠어. 


10. 프로필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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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문장완성검사

11. 유답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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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결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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